▲ 이필상 고려대 교수 | ||
경제운영의 기본목표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풍요롭게 살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생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경제가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는 잘하고 있는데 민생은 어렵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민생이 어렵다면 경제는 당연히 잘하는 것이 아니다. 이병완 비서실장의 발언은 성장률 등 경제지표는 괜찮은데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서민경제가 어렵다는 의도에서 한 말로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지표가 좋아도 민생이 어렵다면 분명 경제는 잘못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우리경제는 잠깐 반짝했다가 다시 불황에 빠지는 더블딥 현상을 겪고 있다. 연초만 해도 수출증가와 내수회복에 의한 쌍끌이 회복세가 완연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환율하락, 유가상승, 금리인상 등 3대 악재를 만나 곧바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더구나 억지 세금정책으로 부동산 버블이 꺼질 경우 가계발 금융위기까지 우려되고 있다.
경기가 안 좋으면 실업부터 는다. 실업이 늘면 민생이 불안하고 소비가 위축된다. 소비가 위축되면 투자가 사라지고 다시 경제의 동력이 꺼지는 악순환이 생긴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매출액 순위 500대 기업의 올 하반기 채용규모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서 9.7%나 줄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에도 경기가 안 좋아 고용이 늘지 못했는데 작년보다 더 줄면 실업의 불안이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다.
이런 가운데 현대자동차가 부분파업에 들어가 산업현장에서 노사분규의 불안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파업은 즉각 투자와 생산을 위축시킨다. 투자와 생산이 위축되면 실업과 불황이 더 심해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기업은 경제가 어려울 때일수록 노사가 함께 살려야 하는 공동 운명체다. 이런 의식이 없이 노사가 밥그릇 챙기기 싸움만 한다면 실업은 늘고 경제는 더 어려워진다.
이런 상태에서 나온 이병완 실장의 발언은 참여정부의 경제인식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어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우리 경제의 최대난관은 정부가 어떤 진단과 정책을 내놓아도 기업과 소비자들이 믿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5·31 지방선거 결과는 경제에 대한 정부정책이 실패작으로 도저히 따를 수 없다는 민심을 그대로 드러냈다. 정부가 잘못을 인정하고 새로운 정책을 제시하여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면 우리경제는 희망이 없다는 뜻이다.
급기야 정부는 경제부총리를 교체하기로 하고 권오규 정책실장을 신임 부총리로 내정했다. 그러나 우리경제는 경제팀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운영의 기조가 문제다. 경기는 주저앉고 실업은 늘고 있는데 낙관론으로 일관하며 세금 걷는 일에만 치중하는 편향적인 정책기조를 바꾸지 않는 한 어떤 사람이 맡아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한시바삐 경제위기의 실상을 인정하고 국민이 믿고 따를 수 있는 경제운영의 새 틀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하여 경제를 다시 일으키는 새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