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화여대 교수 이재경 | ||
지난 7월 11일 임명된 전수안 대법관의 취임사 일부다. 최고 사법기관의 판사로서 당연히 지켜야할 입장이다. 그러나 세태가 너무나 그렇지 않기 때문에 주요 신문들이 눈에 띄는 기사로 전 대법관 얘기를 다뤘다. 전수안 대법관은 또 “고독한 성에 머무르거나 공허한 정의를 선언하는 대법관이 되지 않겠다”라고 했다. “오직 국민이 갈구하는 정의의 발견과 선언에만 전념하겠다”는 말도 했다. 전 대법관은 오늘날 한국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공직자 윤리의 기본 원칙을 선언한 셈이다.
7월 들어 주요 공직자들이 줄줄이 임명되고 있다. 이들의 선임방식은 어떠한가? 민주주의 실험 20년 만에 고착된 한국식 인사방식은 한마디로 정파지분에 따른 배분이다. 자질이나 철학, 능력, 인품 등은 검토할 공간이 매우적다. 그러다보니 정파성이 분명한 사람들 아니면 후보가 될 수도 없다. 상대 진영 사람을 낙마시키고 싶으면, 인터넷과 시위 등 선전 전략을 그 인물에 집중시킨다. 상처가 오래 남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그 인물을 꼭 임명해야하면 임명권자의 인사권을 최후의 무기로 사용한다.
최종 임명권자는 국민이 투표로 선출한 대통령이다. 그래서 인사권은 대통령의 가장 강력한 자산이다. 대부분 공직에 대한 인사권은 국민이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게 일임했으니 그 권한을 행사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인사 구조에서 한국식 민주주의의 특성이 나타난다. 간단히 말하면 한국 민주주의는 선출만을 위한 제도로 축소됐다. 얼마의 표차가 됐건 일단 당선돼 자리에 앉은 뒤에는 지극히 권위적인 권력행사 방식에 집착하는 관행이 뿌리 깊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여기 겹치는 문제가 공직자들의 윤리 의식이다. 어느 나라에서건 민주사회에서 공직자는 두 개의 상전을 모신다. 하나는 행정서비스의 대상인 국민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에게 자리를 준 임명권자다. 이상적인 공직자상은 당연히 국민과 공익을 앞세우는 일처리 방식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공익은 추상적이라 구속력이 적고 임명권자의 입김은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만큼 가깝다. 더 나은 자리를 주는 것도 임명권자다.
공익을 위해 상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일하는 공직자를 키우려면 크게 두 가지가 바뀌어야 한다. 첫째는 권위적 관행에 매몰된 공직 문화의 구조적 문제점들을 노출시켜 제대로된 민주적 공직윤리가 일상화하도록 내부에서 변화의 틀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4년 또는 5년에 한 번 국민이 행사하는 투표권만으로 민주적 정치문화가 꽃을 피우기는 어렵다. 전수안 대법관 같은 사람이 있어 본보기가 제시되는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런 일이다.
두 번째 일은 언론의 몫이다. 매일의 정부업무가 민주적으로 진행되는 ‘일상적 민주주의’는 여론조사와 언론 보도가 주축이 돼서 가능해진다. 정파적 시각으로는 인물 검증도 정책 검증도 제대로 하기가 어렵다. 더 늦기 전에 자신이나 후견세력의 관점이 아닌 독자의 시각으로 정부감시의 고삐를 죄는 신문과 방송으로 거듭나기를 희망한다. 전 대법관 다짐처럼 “오직 국민이 갈구하는 정의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