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운동을 하는 정신의학자 데이비드 케슬러는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 중에는 가방끈이 짧다고, 돈을 많이 벌지 못했다고, 일을 많이 하지 못했다고 후회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의 한결같은 고백은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짧다는 거였다. 그러니 사랑이 왔을 때 상실을 두려워하지 말고 사랑하라는 것이다. 가장 큰 상실은 사랑을 상실하는 것이니까.
견우 직녀가 만나는 날, 칠석날은 그 사랑의 기적을 꿈꾸는 날인지도 모르겠다. 많은 물질을 가졌지만 늘 공허하고, 많은 정보를 가졌지만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모르는, 풍요롭지만 행복하지 않은 우리들이 다시 한 번 오작교, 그 사랑의 기적의 다리를 건너는 꿈을 꾸게 하는 날!
해인사가 그 칠석날을 기념하는 날을 만들었다. 그런데 궁극의 도를 보겠다고 가족도 버리고 젊음도 버리고 사랑도 버리고 꿈도 버린 인생들이 모인 그곳에서 웬 사랑의 꿈을 꾸는 것일까? 거기에 무슨 사랑의 인연이 있길래? 거기에도 사랑이 있었다! 사랑을 떠나보내고 기도로 인생을 마감한 한 인생이 쌍둥이 연인불로 남아 있었다. 그것은 해인사의 비로자나불이었다. 그 비로자나 법신불이 쌍둥이 연인이었다나.
주인공은 신라의 진성여왕과 그의 연인이었던 위홍이다. 지난 2005년 해인사에서 발견된 쌍둥이 비로자나불은 기록에 따르면 중화 3년 계묘(癸卯 AD 883)년 여름에 조성된 것으로 되어 있고, 깊은 사랑이 만든 불상이라는 판단 때문에 음력 칠월칠석을 즈음한 29일에 사랑과 만남의 인연을 돌아보는 ‘비로자나 데이 문화축제’를 기획하게 되었다는 것이 해인사 측의 설명이다.
사실 진성은 유약하고 무능한 왕이었다. 최치원을 내세운 개혁은 실패하고, 견훤이 일어나고 궁예가 일어났다. 아우성치는 어지러운 시대는 여왕을 욕망의 화신으로, 악군으로만 기록되게 만들었지만 사나운 시대일수록 권력무상은 깊고, 권력무상이 깊을수록 보이지 않은 위로가 보였을 수도 있겠다. 왕이었으나 살아서 권좌를 내려와야 했던 진성은 위홍의 원당(願堂)이 있던 해인사에 들었다. 죽어서 위홍과 같이 묻히고자 원했기 때문이다.
진성과 위홍이 비로자나불을 만들고 해인사를 조성한 것은 권력의 힘이고 물질의 힘이겠지만 무상한 세월의 강을 건너온 것은 권력이 아니라 사랑의 기원이었다. 죽은 연인을 위해 기도하면서 죽을 자리를 찾았던 진성이 추구한 것은 감미로운 사랑의 노래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전생애를 걸어도 아깝지 않은 그 무엇이 존재한다는 것은 매순간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희망의 씨앗임은 분명하다.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