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언론인 | ||
이들 소장파 의원들은 김 대통령이 귀국하자마자 권노갑 전 최고위원과 박지원 정책기획수석의 정계은퇴를 요구하는 비수를 뽑았다. 이어 당내 갈등이 확대되자 김대중 대통령은 집권당 총재직 사퇴라는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이듬해 5월에는 아들의 비리 연루설에 대해 사과하고 탈당했다. 2000년 11월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김대중 대통령의 레임 덕은 임기 2년 전부터 시작되었던 셈이다.
그런가 하면 1997년 김영삼 대통령은 대선 투표일을 한 달여 앞둔 11월 7일 신한국당을 탈당했다. 이회창 대통령후보가 `부패한 ‘3김 정치와의 성전’을 선언하며 탈당을 요구한 지 보름 만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의 전임이었던 노태우 대통령도 당시 민자당의 김영삼 후보와의 갈등끝에 탈당했다.
집권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자신을 후보로 밀어 준 현직 대통령을 공격하는 것을 득표전략으로 삼는 이른바 ‘고려장 정치’는 역대 정권의 실정에다 평화적 정권교체 역사가 짧았기 때문이다. 여·여간 정책의 차별성이 없는 선거에서는 후보의 이미지나 득표전략이 당락을 좌우하게 마련이다. 후보가 국민들에게 참신한 이미지를 심어주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전임자와의 차별화이며 그 차별화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방법은 대통령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다.
지난 2002년 다른 기성 정치인들과는 다른 이미지로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그 여세로 대통령에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이 어느덧 레임 덕을 걱정하기에 이르렀다. 얼마전 열린 우리당 지도부와의 오찬에서 남은 임기동안 넘어야 할 다섯 고개를 얘기했다고 한다. 그 중에는 권력기관의 이탈도 있었고 여당 내부의 이반 등도 들어 있었다. 노대통령이 이 같은 발언을 한 것은 그동안 정권 교체기에 나타나는 레임 덕 현상을 익히 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정권을 물려주고 나가는 대통령으로서는 야당보다 ‘믿는 도끼’로 알았던 여당에서 날아오는 화살이 더 아프게 마련이다. 사실상 열린 우리당 쪽에서는 벌써부터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계급장 떼고…’운운하는 얘기가 나온 것은 벌써 1년 전의 일이다. 그런가 하면 몇몇 초선의원들 사이에선 ‘참여정부 실정의 중심에는 노 대통령이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정권교체기에는 전임 대통령을 밟고 올라 섬으로써 정치적 고지에 올라서려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아직도 임기가 1년 반이나 남아있는 노 대통령은 벌써부터 ‘등뒤의 비수’에 일일이 신경쓰기보다는 국정이 레임 덕의 늪에 빠져 표류하는 일이 없도록 공직사회의 고삐를 바짝 조여야 할 것이다. 그것은 유종의 미를 거두고 퇴임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