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언론인 | ||
당시 문제가 된 사설은 모든 행위는 직업화에 의해 속화하고 추화된다는 요지였다. “직업화라 함은 어떠한 행위에 의하여 생활의 자(資)를 구하고자 함이니 한번 이 불순한 동기가 잠재되는 때에 모든 행위는 그 본래의 목적을 떠나 사경마도(邪逕魔道)에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행위는 직업화에 의하여 그 존엄과 선미와 가치를 상실하는 것이다”. 집필자는 ‘청춘예찬’으로 유명한 명문장가이자 언론인이었던 우보 민태원이었다. 그는 이 사설 때문에 신문지법 위반으로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3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고 발행인 이상협은 벌금 200원을 선고 받았다.
이 자리에서 새삼 일제시대의 신문정간 사건을 장황하게 인용하는 것은 70여 년 전에 쓴 사설의 주장이 요즘의 잣대로 평가해도 어디 한 군데 흠 잡을 데 없이 정연한 논리와 뛰어난 문장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당시의 한국 지식인 사회가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학설을 접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사회학계의 고전으로 되어있는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 등 ‘직업화에 따라 추화된다’는 주장을 담은 연설은 1918년 뮌헨대학에서 행한 것이었다. 아무리 대의명분이 훌륭한 학문이나 정치도 밥벌이 수단으로 전락하면 세속화하고 추해진다는 것이 베버의 주장이었다.
요즘 진보와 개혁을 내세운 몇몇 시민단체들의 비리가 터져 나오고 그들의 명함이 곧 마패가 된다는 비판에 접하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막스 베버의 선견지명과 <중외일보> 사설의 주장에 주목하게 된다. 지난 5월에는 한 시민단체의 전 사무총장이 기업들로부터 9000만 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사건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신문의 한 책임자가 성희롱 사건으로 자리를 물러난 일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이 같은 비행은 그동안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시민단체들이 숫자에 비하면 오히려 빙산의 일각인지도 모른다.
시민단체가 2만여 개가 된다는 사실도 놀라운 일이다. 이러다간 시민단체를 감시하는 시민단체가 또 나와야 한다는 얘기가 단순한 우스개로 들리지 않는다. 한때 참신한 주의 주장과 높은 도덕성으로 국민적 지지 속에 민주화와 개혁을 이끌었던 것이 우리의 시민운동이 아니었던가. 그런 시민운동이 밥벌이 수단으로 직업화한 몇몇 시민단체 때문에 존립 기반이 흔들리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일제 총독부에 의해 정간 처분의 꼬투리가 되었던 70여 년 전 신문 사설에서 우리는 오늘의 시민운동에 드리운 그늘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