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거일 소설가 | ||
먼저 주목할 점은 추세가 무척 안정적이라는 점이다. 일본과의 무역에서 우리는 줄곧 적자를 보아왔고 단 한 해도 흑자를 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그러하리라고 모든 전문가들이 얘기한다.
여기서 피할 수 없는 결론은 그런 안정적인 대일본 무역 적자가 양국 관계의 근본적 구조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발전된 기술, 장비 및 핵심 부품들을 들여와 완제품들을 만들어 다른 나라들에 수출해왔음을 지적한다.
양국 관계의 이런 구조는 19세기 후반 동아시아가 서양의 열강과 교역을 시작한 개항기에 이미 세워진 것이다. 실은 일본과 한국 사이만이 아니라, 일본과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도 그렇다. 일본만이 서양 문명을 효과적으로 받아들여 근대 국가로 빠르게 변환하는 데 성공했다. 그 뒤로 일본은 동아시아의 패권국가가 되었을 뿐 아니라 서양의 우월한 지식들이 동아시아로 유입되는 도관(導管) 노릇을 했다. 당사자들이 인정하든 아니 하든 동아시아 사회들은 일본을 통해서 유입된 서양 지식들에 힘입어 진화했다.
모든 나라들이 제국주의를 추구하던 시기에 그렇게 앞선 나라를 이웃으로 가졌던 것은 우리에게 재앙이었다. 2차대전 뒤, 그 이웃은 발전된 기술과 장비와 핵심부품들의 편리한 공급처가 되었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린 우리의 경제적 성취에서 일본의 기술과 자본은 결정적 역할을 했고 아직도 큰 역할을 한다.
자연히 일본과 좋은 관계를 지니는 것은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일본이 우리보다 훨씬 크고 우리가 일본에 의존하는 정도가 일본이 우리에게 의존하는 정도보다 훨씬 깊으므로 양국 관계가 나빠지면 우리가 일본보다 훨씬 괴롭다.
근년에 두 나라에선 정치적 기반이 약한 정치 지도자들이 나왔다. 그들은 이웃 나라에 대한 공격적 민족주의를 통해서 자신들의 정치적 자산을 늘리는 길을 골랐다. 두 나라 사이의 불행한 역사 때문에 그런 책략은 실패하는 적이 없지만 두 나라 모두 큰 손해를 보게 마련이다.
근자에 일본에선 정권이 바뀌었고, 아베 신조 총리가 노무현 대통령을 찾아 회담했다.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려면 앞으로 두 나라는 더욱 긴밀하게 협력해야 할 것이다. 나라 사이의 옹색해진 관계를 개선할 계기가 나온 셈이다.
이제 정치 지도자들이 정치적 자산을 쉽게 늘리려고 민족주의적 감정을 부채질하는 일을 억제할 책임은 두 나라 시민들에 있다. 그것이 영원히 이웃으로 남을 두 나라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