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인 이광훈 | ||
그에 비해 비제도형은 정치판에서 신산(辛酸)의 세월을 견디어 온 직업정치인들로 주로 야당 쪽에 많은 유형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제도형을 다시 삼국지적, 비제도형을 수호지적 정치인으로 이름지으면서 수호지적 정치인의 전형으로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한명회를 손꼽고 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역시 갑자기 국정의 최고 권좌에 올랐던 최규하 전 대통령이 지난주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최 전 대통령을 보내는 국민장이 치러진 날은 공교롭게도 27년 전 그가 본의아니게 정치적 격랑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던 10·26 바로 그날이었다.
그동안 최규하 대통령에게는 ‘비운의 대통령’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니곤 했다. 엉겁결에 대통령자리에 올랐다가 임기는커녕 겨우 10개월도 못돼 가시방석 같은 자리에서 하야한데다 그 이후 26년여에 걸친 긴 은둔생활이 아마도 그런 꼬리표를 붙게 한 까닭이리라.
최 전 대통령을 굳이 ‘남재희식’ 정치인 분류법으로 평가하자면 삼국지적 제도형 정치인에 속한다. 정치인이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정치와는 담을 쌓고 살아 온 그는 10·26 이전까지만 해도 능력있는 외교관으로, 장관으로 그리고 마침내 국무총리에 이르기까지 관료의 길을 승승장구해 온 인물이었다. 그러던 그가 어느날 갑자기 전혀 준비가 안된 채 정치권력의 정점인 대통령 자리에 밀어 올려진 것이다.
최 전 대통령은 재임 10개월 동안 역대 대통령이 당연한 기득권처럼 누려 온 권력의 잉여가치는 물론 헌법과 제도가 보장한 대통령의 권한조차도 제대로 행사해 보지못한 비운의 대통령이었다. 굳이 사전적 풀이를 끌어대지 않더라도 권력은 남을 지배하여 강제로 복종시키는 힘이라면 권한은 공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직권의 범위, 또는 대리인이 법령이나 계약에 따라서 행사할 수 있는 권능의 범위인 매우 제한적인 힘일 뿐이다.
돌이켜보면 최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면서도 대통령의 권력을 행사하지 못했던 권력의 블랙홀 기간의 실질적인 권력자는 12·12사태를 일으켰던 신군부 세력이었다. 최 전 대통령의 뒤를 이어 권좌에 오른 사람은 당시 신군부의 핵심이었던 전두환 장군이었다. 다 알다시피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재임 8년 동안 법과 제도가 부여한 권한을 뛰어넘어 권력의 잉여가치까지 누렸던 사실상의 제왕적 대통령이었다.
우리는 80년 여름 최규하 대통령이 겪었던 좌절에서 자신의 권력기반을 갖지 못한 대통령은 권력은 물론 최소한의 권한조차 행사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교훈으로 깨닫게 된다. 이른바 제도권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의 한계는 자신이 행사해야 할 권력을 스스로 창출해 낼 힘이 없다는 점이다. 기껏해야 법과 제도가 준 권한 안에 머물거나 더러 윗분이 위임해 준 권력을 조심스럽게 행사해 보는 것이 고작이다. 최 전 대통령은 10·26 이후 유신시대의 유산인 체육관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되기보다는 4·19 이후 과도정부 때의 허정 수반처럼 권한대행으로 끝냈더라면 비운의 대통령이라는 꼬리표를 달지 않았을 게 아닌가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