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은 하늘을 나는 집무실이자 요새다. AP/연합뉴스
‘구름 위의 백악관’ 혹은 ‘나는 집무실(오벌오피스)’이라고 불리는 ‘에어포스원’은 사실 엄밀히 말하면 비행기 자체를 지칭하는 말은 아니다. 그저 미국 대통령이 탑승하고 있는 모든 항공기를 가리키는 ‘콜사인’일 뿐이다.
‘에어포스원’이라는 호칭은 1953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 처음 만들어졌다. 당시 대통령이 탑승하고 있던 ‘록히드 컨스텔레이션’이 비행하고 있는 영공에 동일한 항공편 번호를 사용하는 상업용 여객기가 진입하면서 혼란이 빚어졌던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현재는 대통령이 탑승하고 있는 모든 항공기에 대해 ‘에어포스원’이라는 특정한 콜사인을 붙이고 있다.
특별 군용 항공기를 대통령 전용기로 지정해야 한다는 의견은 지난 1943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때 처음 대두됐다. 당시만 해도 미국 대통령은 장거리 이동시 민간 항공사의 상업용 여객기를 이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보안이나 안전 문제와 관련해서 취약한 점이 많다는 미국육군항공대의 의견에 따라 군용 항공기 도입이 적극 추진됐다.
가장 처음 전용기 후보에 올랐던 기종은 C-87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안전문제가 대두되면서 후보에서 탈락했고, 훗날 백악관의 고위직원이나 영부인의 전용기로 사용됐다. 다음 후보로 지목된 것은 ‘C-54 스카이매스터’였다. ‘세이크리드 카우’라는 별칭으로 불린 이 전용기는 ‘더글러스’사의 민간 여객기인 DC-4의 군용 버전이었다.
코드명 VC-54를 사용했던 미공군 최초의 대통령 전용기인 이 ‘에어포스원’에는 장애가 있는 루스벨트 대통령을 위해 특별히 설치된 휠체어 리프트도 있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 전용기를 1945년 2월, 얄타 회담 참석 때 처음 이용했다. 그리고 이 전용기는 그 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2년 더 사용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에어포스원’으로 선택된 기종은 여럿 있었다. 1950년대 말에는 각각 ‘컬럼바인 1, 2’로 불리던 ‘록히드 컨스텔레이션’ 두 대가 도입됐고, 1960년대와 1970년대부터는 보잉사의 항공기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현재 미국 대통령이 사용하고 있는 ‘에어포스원’은 1990년 조지 H.W. 부시 대통령 때 도입된 것으로, 보잉 747을 개조한 모델인 747-200B다. 코드명은 VC-25A다.
‘에어포스원’을 관리 및 작동하는 것은 WHMO(백악관 군사실)에 소속되어 있는 대통령 수송대며, ‘에어포스원’이 이동할 때는 여분의 물자나 전투기 등을 싣고 있는 여러 대의 수송대가 따라 붙는다. 또한 ‘에어포스원’의 모든 편대는 일종의 군사 작전으로 분류된다.
크기가 크기인 만큼 ‘에어포스원’을 작동하거나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은 사실 어마어마하다. ‘미국정보자유법’에 따르면 비행시 한 시간마다 18만~20만 달러(약 1억 9000만~2억 1000만 원)가량의 세금이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어포스원’의 사양과 구조를 보면 ‘공중 기동 사령부’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우선 크기부터 압도적이다. 익폭(비행기 날개의 좌우 길이)은 59.64m며, 전체 길이는 도시의 한 블럭 크기와 맞먹는 70.66m다. 높이는 19.33m로, 6층 건물에 해당한다. 엔진은 ‘제너럴 일렉트릭’의 CF6-80C2B1 네 대를 사용하며, 추진력은 대당 252kN, 최고 속력은 시속 1014km다. 항속거리는 1만 2553km지만, 공중 급유가 가능하기 때문에 사실 무한대라고 볼 수 있다. 최고 비행 고도는 1만 3747m며, 이는 일반 여객기보다 약 3000m가량 더 높은 것이다.
지난해 11월 7일 오산공군기지에 도착한 에어포스원에서 내리는 트럼프 대통령 부부. 현재의 ‘에어포스원’은 1990년 조지 H.W. 부시 대통령 때 도입된 것으로, 보잉 747을 개조한 모델인 747-200B다. 사진공동취재단
내부는 총 3층으로 이뤄져 있고, 총 면적은 372㎡다. 승무원 26명, 승객 76명을 포함해서 동시에 1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다. ‘에어포스원’에 탑승하는 직원들로는 조종사와 부조종사, 항공 엔지니어, 항해사, 승무원 등이 있으며, 모든 직원들의 유니폼에는 왼쪽 가슴 부분에 대통령 문장과 함께 ‘에어포스원’이라는 명칭이 새겨져 있다.
내부에는 대통령 개인 공간인 침실부터 집무실, 회의실, 참모진 사무실, 브리핑룸, 통신실, 승무원실, 의무실, 조리실 등이 있다. 대통령 침실은 비행기 앞부분인 기수부에 위치해 있다. 전용 욕실과 소파 겸 침대가 구비되어 있으며, 작은 규모지만 운동 시설도 마련되어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에는 어린 두 딸을 위해 위게임 콘솔도 설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집무실은 대통령 침실 옆에 있다. 이곳에서 대통령은 수뇌부와 회의를 하며, 유사시에는 자국민들에게 TV 대담을 할 수도 있다. 회의실 겸 식당으로 사용되는 공간에는 완벽하게 방음시설이 되어 있으며, 50인치 TV가 설치되어 있어 언제든 화상 회의를 진행할 수 있다.
기체 중앙에 위치해 있는 중앙통제실에는 초고속 인터넷, 전화기, 생방송 시청이 가능한 TV 등이 설치되어 있으며, 직원 한 명이 관리하고 있다. 또한 통신실에서 전송되는 모든 내용은 암호화 처리되며, 다중주파수 무선통신으로 공중 간에, 혹은 공중과 지상 간의 통신이 가능하다.
조리실에서는 다섯 명의 요리사가 근무한다. 동시에 100인 분의 식사 준비가 가능하지만, 모든 음식은 냉동 상태로 진공 포장되어 기내에 반입되며, 주방에서 데워서 먹도록 되어 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냉동고에는 늘 3000끼니의 식사가 준비되어 있는데, 이는 50명의 승객들이 20일간 매일 세 끼씩 먹을 수 있는 분량이다.
‘에어포스원’에 동행할 수 있는 기자들은 한 번에 열세 명까지다. 기자들은 비행기 뒷부분에 마련되어 있는 이코노미 좌석을 이용하며, 각 좌석에는 개인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어 영화 및 음악감상이 가능하다. 다만 비행 경비는 기자들이 개별적으로 지불해야 한다. 또한 대통령과 동행하는 의원, 주지사, 유명인사 등은 기자들과 분리된 옆 방을 이용하게 된다.
의무실에는 대통령 전속 의료진이 늘 동행하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수혈을 할 수 있도록 대통령과 동일한 혈액형의 피를 다량 보유하고 탑승한다. 이밖에도 기내 안에는 모두 85대의 전화기가 설치되어 있는데, 베이지색은 기밀용, 흰색은 일반용이다. 창문은 모두 방탄이며, 기체 앞부분에는 높이만 다른 두 개의 출입문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에어포스원’을 가장 강력한 비행기라고 부르고 있는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바로 철통방어를 자랑하는 보안 시설 때문이다. 이 정도면 ‘하늘 위의 요새’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
‘에어포스원’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똑같은 기종에 외관도 동일한 두 대가 준비되어 있다. 밤을 새우는 장거리 이동시에는 테러나 비상 사태에 대비해 이 두 대가 항상 같이 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통 30분 정도의 시간 차를 두고 비행하며, 몇 달 간격으로 주기적으로 교대해서 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에어포스원’은 어지간한 미사일이나 핵무기, 화학무기, 생물학 무기의 공격에도 끄떡없는 방어 시스템을 자랑한다. 레이더 교란기, 사이버 공격 및 열감지 미사일 감지 센서, 로켓편향시스템 등이 있으며, 양쪽 날개 부분에는 적군의 미사일 공격시 혼란을 주기 위해서 연막탄이 내장되어 있다.
또한 전자기기를 무력화시키는 전자기펄스(EMP)를 방지하기 위해서 기내 모든 전자장치는 유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본토가 공격을 받을시에는 기내 첨단 통신장비를 이용해서 ‘에어포스원’이 곧바로 이동식 지휘센터의 기능을 수행한다.
대통령은 비행 중에도 19개의 화면을 통해 지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관찰할 수 있고, 위기 상황 발생시에는 철저하게 보안이 된 85대의 전화기를 통해 동맹국 및 군부대와 회의를 주재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세계 최고의 비행기라 할지라도 30년 가까이 된 만큼 노후화는 피할 수 없는 것이 사실. 이미 교체할 수 있는 부품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 데다 안전상의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몇 년 전부터 후계기 도입을 고민하고 있는 백악관 측은 “보잉 747-200은 1987년 이미 생산을 중단했다. 더 이상 미국의 상업용 여객운송산업에서도 사용되지 않고 있는 기종이다. 현재로는 ‘에어포스원’이 운항되고 있는 비행기로는 유일하다”고 말하면서 “앞으로 더욱 심각한 문제들이 계속해서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이에 따라 새로운 ‘에어포스원’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마침내 지난 2월 트럼프 대통령은 보잉사와 새로운 ‘에어포스원’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에 계약을 맺은 두 대의 기종은 보잉 747-8로, 코드명은 VC-25B다. 대대적인 개조 작업에 들어가되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항공조정장치, 통신장치 등을 제외하고는 기존의 VC-25A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이에 대해 보잉사는 “기존의 그 어떤 747 기종보다 더 깨끗하고, 더 조용하며, 온실가스 배출량은 더 적을 것”이라며 자부심을 나타냈다.
하지만 계약 과정에서 진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바로 가격 협상 때문이었다. 최종적으로는 39억 달러(약 4조 1800억 원)에 계약을 맺긴 했지만, 당초 보잉사가 제시했던 가격은 이보다 더 높은 50억 달러(약 5조 3000억 원)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트럼프는 지난해 12월 트위터를 통해 “(대통령 전용기 두 대에) 40억 달러가 넘는다니 말도 안 된다”라며 비난하는 글을 올린 바 있다. 그리고 무조건 40억 달러(약 4조 원) 이하여야 한다는 트럼프의 주장에 따라 무려 14억 달러(약 1조 5000억 원)를 깎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새 얼굴이 될 차세대 ‘에어포스원’의 공식적인 운항은 오는 2024년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46대 혹은 47대 대통령이 처음 사용하게 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