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대 교수 이필상 | ||
이번 조치로 지급준비율을 2%포인트 올릴 경우 시중의 부동자금 규모는 이론적으로 최대 130조 원까지 줄어들 수 있다. 현재 부동산시장을 기웃거리는 부동자금이 528조 원 규모다. 이런 상태에서 130조 원이 줄어들면 부동산시장 안정화에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효과가 과연 나타날지 의문이 크다. 우선 현재 은행들은 잉여자금이 풍부한 상태다. 따라서 지급준비율을 높여도 대출금이 줄어드는 효과는 미미할 수 있다. 더욱이 지급준비율을 높일 경우 은행들이 부동산 담보대출보다 일반기업자금대출을 줄이면 부동산시장 안정화효과는 없게 된다. 실로 우려가 되는 것은 지급준비율 조정이 부동산시장 안정에는 실패하고 경기침체만 심화시키는 것이다. 지급준비율을 예정대로 올려 시중자금이 줄고 금리가 올라갈 경우 기업들의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 또 돈이 돌지 않아 소비가 줄 수 있다. 이렇게 되어 투자와 소비가 모두 감소하면 가뜩이나 어려운 경기는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더 큰 우려는 이번 정책이 최악의 경우 돈줄을 죄고 금리를 높여 부동산시장의 거품을 급격히 붕괴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시장이 경착륙할 경우 주택가격이 폭락하면서 은행과 집을 산 사람들을 한꺼번에 난국으로 몰아갈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이번 정책은 긍정적 효과보다는 우려가 큰 정책이다.
한국은행은 콜금리를 조정해서 시중의 자금량을 조절하는 정책을 펴왔다. 시중에 부동자금이 과다할 경우 콜금리를 올리고 시중자금이 부족하면 콜금리를 내리는 방법으로 통화량을 조절했다. 이런 시장기능에 입각한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급준비율 조정이라는 직접적인 통화량 조절방법을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결국 이번 조치는 부동산투기열풍을 잠재우기 위해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을 수단으로 동원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부는 그동안 부동산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재건축 규제, 양도세 강화, 종합부동산세 확대 등 갖가지 정책을 동원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면서 거꾸로 투기열풍이가열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결국 정부에 대한 불신이 정책을 무위로 만든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한국은행의 통화정책까지 동원한다면 이는 경제의 혈액이라고 하는 돈의 흐름을 왜곡시켜 경제자체를 곤경에 빠뜨리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더구나 이 정책에 대해서까지 국민의 불신이 작용한다면 경제는 통화정책의 수단까지 잃는 심각한 상황이 된다.
한국은행의 기본목표는 물가를 안정시키고 경제의 건전한 성장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런 한국은행을 투기열풍에 휘말리게 하는 것은 경제를 보통 위험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시장을 억누르는 조세정책을 펴다가 거꾸로 시장의 거센 저항에 부딪혀 부동산가격을 폭등시킨 사실을 되새겨야 한다. 다음 시장의 수급원칙에 맞는 정책으로 전환하여 신뢰를 회복하고 정책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한마디로 부동산시장은 부동산정책으로 안정시켜야 한다. 한국은행은 본연의 정책수행에 흔들림이 있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