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대 교수 이주향 | ||
그래서인지 도시의 밤에 반짝반짝 빛나는 성탄절 트리를 보면 이중으로 가슴이 아프다. 한편에서는 성탄절이 성탄으로부터 저만치 멀어져가는 것 같고, 다른 한편에서는 매연에 지친 도시의 나무들이 이젠 또 불빛들로 지치는 걸 보는 게 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빛이 있으면 잠들지 못하는 나는 저 환한 불빛으로 휴식을 빼앗긴 나무들이 진짜 안쓰럽다. 겨울을 나기 위해 나뭇잎을 버리고 물기를 버리고 바짝 마른 모습으로 성자처럼 서 있는 겨울나무의 지혜가 연녹색의 생명의 봄을 만드는 것일진대 우리는 왜 고요한 구도의 시간을 방해하고 즐거워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쓸쓸함의 미학을 보지 못하고 값싼 문명으로 덕지덕지 덧칠하는 것일까.
어렸을 적부터 우리는 배려를 배우지 못한 것이다. 이웃이 무엇을 원하는 지, 이웃에겐 무엇이 치명적인 지. 여전히 우리는 목표를 정해놓고 누가 누가 잘하나, 게임만을 하고 있으니까. 공부만 하라는 데 왜 공부도 못하니라고 부모들은 노래를 불렀고, 구석으로 몰린 아이들은 공부만 하라니까 공부를 못하는 거라고 항변하면서 자기 아이들에게는 또 공부만 잘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범생’이라는 말이 꽉 막힌 인생이란 뜻이듯이 공부만 하는 것은 공부가 아니다. 공부라는 것이 인생을 제대로 살고, 풍부하게 살고 깊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아무 것도 말고 공부만 하라는 명령은 공부하는 이에 대한 배려라기보다 인생포기각서는 아닐는지…. 이번에 국회에서 초등학교에 청소용역비 238억 원 지원 여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 학생들이 청소를 안해도 되니까 교육환경이 좋아지겠다는 생각이 들기보다 돈이 사람을 망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집에서도 청소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데 왜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기공간을 청소하는 기쁨을 빼앗아가는 것일까. 자기공간을 정리하고 청소하는 것은 목욕하는 기쁨과 같은 것인데.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공간을 아끼는 사람이고 내 공간 사랑은 자기존중의 기본이다. 내가 어지럽게 만든 내 공간을 정리하면서 내 기분은 또 얼마나 정리되는가. 왜 옛 스승들은 제자들에게 청소를 시키고 밥 짓는 일을 시켰을까. 그건 기본이고 초석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기본을 필요 없는 일, 하찮은 일로 여기면 무슨 공부든 공염불이라고 믿었던 어른들의 지혜를 돌아봐야 한다고 믿는다. 나태주 시인의 시 ‘시’는 이렇게 시작된다.
‘마당을 쓸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이 마음이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