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향 수원대 교수 | ||
새해엔 무엇보다 자연의 숲속에서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곳은 문경새재 휘양산 품속이다. 여기는 눈이 제법 많이 내렸다. 이렇게 눈이 쌓이면 바깥세상과는 단절이라는데, 그 ‘단절’이 공포스럽지 않고 여기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묘미가 숲 속엔 있다. 자연 속에서 내 맘을 풀어놓다 보면 잭 콘필드의 <마음의 숲을 거닐다>에 나오는 대로 “우리가 미래를 위한 계획, 기대, 야망에 사로잡혀 과거에 대한 후회, 죄책감, 부끄러움에 휩싸인 채 인생을 소모”해왔음을 알게 된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간디도 이런 얘기를 했단다.
“내게는 오직 세 가지 적이 있습니다. 가장 손쉬운 적은 대영제국입니다. 두 번째 적은 인도 국민으로, 이는 훨씬 더 까다로운 상대입니다. 그렇지만 내게 가장 만만찮은 적은 간디라는 남자입니다. 내게 그는 참으로 벅찬 상대입니다.”
‘나’의 편협한 시각과 헛된 기대와 실체 없는 두려움이 세상을 왜곡하고 오늘을 불안으로 채우며 내 정신적인 성장을 방해한다. 헛된 바람들이 이루어지는 듯하면 그저 들뜨고, 이루어지지 않는 듯하면 그저 괴로워하는 우리는 여전히 미숙아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연인과 데이트를 하듯 자연 속에서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계획과 함께 또 하나의 계획은 내 몸의 말, 마음의 말에 귀 기울이겠다는 것이었다. 독재자가 시민을 부정하듯이 내가 내 감정을 부정하고 억압하면 당연히 그 감정들은 내게 못된 짓을 할 테니까. 몸이 아프거나 세상이 두렵거나 기분이 우울하거나 괜히 짜증을 내거나 공격적이 되거나! 그럴 때는 친구와 터놓고 얘기하듯이 마음과도 만나야 한다. 부끄럽다고 감춰두었던 은밀한 소망을 다독이고, 너무나 아파서 아예 생각조차 회피했던 내 집착의 뿌리를 찾아가고, 빠른 체념 뒤에 가려진 본질적인 두려움을 이해해주고, 쓸데없이 친절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혔던 착한 사람 콤플렉스도 만나야 한다. 잭 콘필드는 이렇게 쓰고 있다.
“만일 당신이 고독, 두려움, 혼란, 슬픔, 분노, 혹은 중독과 씨름하고 있다면 당신이 행하고 있는 그 투쟁을 느껴보라. 내면의 적들, 내면의 독재자들, 내면의 요새들을 바라보라. 자기 내부의 모든 싸움들을 보면서 당신이 그 갈등을 얼마나 오래 지속했는지 알아차리라. 가만히 열린 마음으로 이 경험들을 나타나게 하라. 그저 관심어린 다정한 시선으로 그 각각을 차례로 바라보라.”
뭔가를 툭툭, 털어 버리지 못해 삶이 무거워 허우적거릴 때 자기를 살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이를 악 문다고 달라지거나, 툭툭 털어내겠다 다짐한다고 버려지는 것은 없으니까. 그 때는 차라리 내 안을 응시하는 기도가 구원이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