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진정한 논점은 박 후보의 전략이 충분치 못하다는 점이다. 상대 후보의 검증에 집착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부정적 특질을 띠게 되고, 검증이 주로 행적에 관한 것이면, 그런 특질은 더욱 짙어진다.
박 후보 진영이 이상하리만치 전략적 감각이 떨어진다는 점은 이 후보의 ‘경부 운하’에 대항해서 ‘일·한·중 열차 페리’를 제시했을 때 드러났다. 열차 페리는 논쟁의 마당을 물리적 기반 시설에 고착했다. 그런 ‘삽질’에선 이 후보가 당대 제일이라는 것을 모두 인정하니 그 마당에선 박 후보가 이길 길이 없다.
박 후보 진영은 운하의 타당성도 검증하겠다고 나섰다. 아직도 자신들의 전략적 실수를 깨닫지 못했다는 얘기다. 운하의 논점은 경제적 타당성인데, 그것은 미래의 모습에 관한 많은 가정들을 포함하므로 객관적 평가가 어렵다. 그렇다면 양 진영의 논쟁은 깔끔하게 끝날 수 없고 결국 논의는 ‘삽질’에 더욱 고착될 것이다.
지금 박 후보가 마음을 쓸 일은 논쟁의 초점을 빨리 ‘삽질’에서 다른 데로 돌리는 일이다. 그 많은 실정에도 노무현 대통령이 정국을 이끌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끊임없이 자신에게 유리한 논점들로 논쟁을 유도했기 때문이다.
지금 그런 목적에 좋은 논점들이 많다. 특히 좋은 것은 영어 문제와 환율 문제다.
해마다 몇만 명의 어린 학생들이 영어를 배우러 외국으로 떠나는 실정이니 영어 문제는 대부분의 가정들에 절실하다. 이 문제를 다루는 정책은 당연히 주목받을 터이고, 해답도 ‘영어 공용’이란 모습으로 이미 나와 있다.
경제 분야에서 당장 심각한 것은 환율 문제인데, 그것의 유일한 대책은 ‘달러 채택(dollarization)’이다. 달러를 우리 화폐로 삼는 길만이 단숨에 그리고 영원히 환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영어 공용과 달러 채택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이고 현실적인 해결책들이다. 물론 그런 대책들은 거센 민족주의적 저항을 부를 것이다. 바로 거기에 묘미가 있다.
영어 공용과 달러 채택에 대한 거센 반발은 적어도 논쟁의 초점을 운하에서 박 후보 자신이 선택한 논점들로 돌릴 것이다. 그리고 시민들을 설득해서 국경 너머를 보도록 만드는 과정에서 박 후보는 자신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기틀을 향상시킬 비전을 보여줄 수 있다.
민족주의가 늘 거센 우리 사회에서 영어 공용과 달러 채택은 정치가들에겐 ‘독배’로 보일 것이다. 실제로 그렇다. 큰 병에 대한 약은 독약의 특질을 짙게 띨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 두 정책들은 위기를 맞은 후보에게만 권할 수 있다.
그런 처방이 박 후보처럼 강인한 정치가에게도 너무 독한 약이 될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그 독기에 무너지지 않는다면 박 후보의 체질은 말할 수 없이 튼튼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약효는 시간이 갈수록 커질 것이다. 영어 문제와 환율 문제는 앞으로 더욱 커질 터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런 결단은 두 후보들의 경쟁을 보다 건설적이고 서로 상처를 덜 내는 방식으로 바꿀 것이다. 필자를 포함한 많은 시민들은 두 분 모두 훌륭한 후보라고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행적의 검증보다는 정책의 대결이 당연히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