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인 이광훈 | ||
“야, 임마 술 담배 끊어. 그리고 탄산음료 같은 것도 좀 줄이고.”
“탄산음료가 뭔데.”
“이런 멍청한 친구를 봤나. 사이다나 콜라처럼 거품나오는 음료수도 몰라?”
온갖 구박을 다 참고 견디면서 얻어 낸 대답이 역류성(逆流性) 식도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식도 아래쪽 횡격막 협착부에 있는 괄약근(括約筋)이 역류를 막아주는 기능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에 위산이 거꾸로 올라와 식도가 손상되었다고 했다. 협착부니 괄약근이니 잔뜩 어려운 단어로 겁을 주기에 위산과다면 위산과다지 뭐 그리 어렵고 복잡한 병이 다 있느냐고 빈정댔더니 돌아온 답이 명답이다. “야, 이 친구야, 온 세상이 다 거꾸로 돌아가는 판에 위장이라고 온전하게 있으라는 법 있어?”
그 친구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사회는 민주화와 함께 물이 거꾸로 흐르듯 밑에서 위로 치받고 아랫돌이 웃돌을 누르는 역류성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바람에 학교에선 학생이 선생을, 교사가 교장을 우습게 알고 회사에선 직원이 사장을 우습게 알고 집안에서는 자식들이 부모 말을 듣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는 등등 그의 푸념은 끝없이 이어졌다.
하기야 거꾸로 된 곳이 어디 학교나 회사, 집안뿐이겠는가. 나라를 경영한다는 정치인들까지도 변신을 밥먹듯하고 어제까지 깍듯이 모시던 ‘주군’을 손바닥 뒤집듯 쉽게 배반하고 돌아서는 세상이다. 3년여 전 ‘노무현당’을 창당한다며 민주당을 뛰쳐나왔던 의원들이 이번에는 자신들의 손으로 만든 당에서 무더기로 탈당했다. 그 탈당의원들의 첫 워크숍은 노 대통령을 더 혹독하게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으로 일관했다.
며칠 전에는 어느 부장판사가 대법원장의 거취문제를 공개적으로 들고 나왔다. 대법원장의 ‘부정적인 행태’ 때문에 국민들이 사법부를 불신하고 있으니 거취에 결단을 내리라는 사실상의 사퇴촉구였다. 부장판사가 사법부 수장의 용퇴를 거론한 것은 위계질서가 가장 엄격하고 보수적이라는 사법부에도 역류성 문화가 스며들기 시작했음을 말해준다.
이처럼 우리사회의 역류를 막아주는 괄약근의 장악력이 떨어져 아래에서 거꾸로 치받는 세상이 된 것은 민주화로 권위주의가 무너지면서 드러난 변화다. 그러나 문제는 권위주의를 청산한다면서 우리사회에 필요한 최소한의 권위마저 무너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 사회학자 하버마스는 후기 구조주의를 두고 “아기를 목욕시킨 더러운 물을 버리면서 아기까지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굳이 하버마스의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사회도 권위주의를 청산한다면서 남겨 두어야 할 권위마저 함께 무너져 버렸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권위의 실종으로 온 세상이 거꾸로 가는 역류성 사회로 전락했는데도 그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