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영준 경희대 교수 | ||
이번 공정위 조사에 의하면 정유사들의 교묘하고도 기술적인 담합과 농간 탓에 소비자들이 기름값 바가지를 쓸 수밖에 없는 구조였음이 밝혀졌다. 2004년 4월부터 6월까지 70일간에 정유사들은 2400억 원의 부당이익을 얻고 그만큼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입혔다. 어쩐지 대표적 정유사인 SK사는 2004년 한해 영업이익이 1조 6200억 원으로 전년대비 2배가 넘었다고 하니 그 내막이 짐작이 간다.
이것만이 아니다. 최근 공정위에 의해 적발된 주요 가격 담합 피해행위를 보면, 소비자 피해 추정액이 합성수지(1조 5600억 원), 석유류(2400억 원), 세탁·주방세제(4000억 원), 밀가루(4000억 원), 페인트(770억 원), 은행이자와 수수료(590억 원) 등 밝혀진 것만 합해도 수조 원에 이른다. 또 공정위원장은 며칠 전에 그동안 학부모들의 원성을 샀던 교복값과 제약사들도 불공정행위가 의심되어 조사에 착수했다고 했다.
선진국에 비해서 시장 크기도 훨씬 작고 적발 기술도 별로 발달되지도 않은 나라에서 왜 불공정행위 혐의가 선진국보다 결코 적지 않은 것일까. 이유는 단순했다.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 처벌이 선진국에 비하면 솜방망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선진국은 담합행위를 한 기업들은 카르텔로 벌어들인 이익보다 훨씬 많은 벌금(미국은 이익의 2배)을 낼 뿐 아니라,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소비자·기업들에게 피해액의 최대 3배를 배상해 줘야 하고, 행위 가담자는 형사처벌을 받고, 회사는 불공정한 기업이란 오명으로 한순간에 이미지가 추락해 버린다.
즉, 선진국에서는 담합행위가 적발되면 끝이기 때문에 추상 같은 일벌백계의 원칙이 적용되지만 우리는 불공정행위를 통해 얻은 부당이익의 10% 정도밖에 벌금으로 내지 않기 때문에 우리 기업들의 경우 담합행위는 그야말로 꽃놀이패다. 일단 대부분 안 걸리기 때문에 예상이익이 엄청나고, 만약에 걸리더라도 1할만 물어내면 되고, 또 유능한 변호사를 사서 법원에다 소송하면 대부분 깎아주거나 무혐의(실제로 소송건수 중 40%)로 이기게 되니까 남아도 한참 남는 장사다.
이런 버릇에 길든 우리 기업들이 선진국에서 거래를 하다가 수억 달러씩 벌과금을 물고 남의 나라 감옥에서 구속되었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들리는 것은 당연한 귀결인지 모른다. 결국은 담합의 추억은 단기적으로는 우리 소비자들에게 심한 피해를 입히게 되고, 장기적으로는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낙오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피해가 근본적으로 사라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현행처럼 공정위만 믿고 기다릴 수는 없다. 소비자들 스스로 나서야 한다. 첫째 정치인들을 각성시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해서 선진국처럼 일벌백계할 수 있는 처벌수위를 대폭 강화하여야 하고, 둘째 공정위가 전유물로 갖고 있는 전속고발권을 폐지하고, 사소(私訴)와 집단소송제 도입을 통해 시장에서의 소비자 주권을 바로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