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향 수원대 교수 | ||
제일 먼저 동생은 거실에서 TV를 치우고 한쪽 벽면에 책장을 붙였다. 그리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파울로 코엘료를 읽고, 헤세를 읽고, 신화와 관련된 책들을 읽더니 마침내 융의 심리학 관련 책들을 보고 니체의 철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쇼핑이 눈에 띄게 줄고 외출이 줄고, 마침내 거실이 책이 있는 카페가 되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다면서, 원래부터 영화 2시간 보고 나면 감상 4시간 얘기해야 하는 그 섬세한 감수성으로 되레 내게 자신이 깨달은 신화의 비밀들을 풀어놓기 시작했고 차라투스트라를 해석해 주기도 했다.
세상의 모든 생명들은 파장이 있어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동생이 바뀌고 나니까 동생네 식구들이 편안해지고 무엇보다도 집안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제자리를 찾지 못한 살림들이 얽히고 설켜 어수선했던 집안이 정갈하게 정리되어갔다. 거실은 식구 모두를 위한 공간이니까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며 동생은 자기만을 위해 안방 한 구석에 자기 책상을 들였다. 거기서 일기도 쓰고 기도도 하는 것이다. 그렇게 고요해지는 시간이 있으니까 삶이 정말 평온해진다는 것이었다. 동생은 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지고 사랑스러워졌다.
특이한 건 마당에 새들까지 날아들기 시작했다는 거였다. 동생이 무슨 새들을 부르는 주문을 외고 있었겠는가. 빌라 1층인 동생네 베란다 앞마당에는 소나무 두 그루가 있다. 동생은 그 소나무 사이에 돌로 된 절구를 들여놓고 물을 부어놓았는데, 그곳이 동네 모든 새들의 놀이터가 된 것이다. 거실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하고 있으면 이름도 모르는 새들이 날아들었다가 물 마시고 목욕하고 놀다가는 모습이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없다. 나는 알았다. 기도는 “새야, 날아들어라”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나무를 심고 샘을 파는 일이란 것을.
동생이 말한다. 예전엔 20~30대의 열정과 아름다움이 끝나면 무슨 낙으로 사나했는데 마음의 평화를 누리는 게 진짜 낙이었다고, 삶은 살아볼수록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거였다고, 이제는 청소하는 것도 기도하는 시간이라고 행복해한다.
집안의 중심이 그렇게 바뀌니까 집안의 물건들까지 사랑받는 흔적이 역력했다. 언제나 넘쳐나서 도무지 장식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았던 소품들이 사라지고 깨끗하게 정리된 탁자, 정리된 책들, 먼지 없는 화분들, 들어가서 일하고 싶은 부엌…. 모든 물건들이 제자리에서 편안하게 주인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는 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책 한권 읽을 수 있고, 차 한 잔을 마셔도 기분이 좋아지는 공간, 그것이 동생의 거실이었고 동생의 영혼이었다. 늘상 거울을 끼고 살았던 도시적인 여자가 그렇게 변하다니! 사람은 함부로 평가해서 규정하는 게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나’를 돌아보면서 나도 몰랐던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이! 조금만 신경을 쓰면 자신을 편안히 풀어놓을 수 있는 공간을 집안에 확보할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