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복거일 | ||
노 대통령의 그런 집착은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목적에서 나왔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런 견해가 튼튼한 근거를 지녔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얘기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분명하다. 노 대통령은 이미 오래 전부터 남북한 정상회담 자체에 큰 뜻을 부여해 왔다.
노 대통령의 마음속에선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물려받은 대북한 유화정책이 자신이 고른 정책들 가운데서 핵심적 자리를 차지한다. “남북한 관계만 잘 하면 다른 것들은 깽판을 쳐도 된다”는 후보 시절의 발언에서 그런 생각이 잘 드러났다. 정상회담이 서울에서 열리면 김 전 대통령도 못 한 일을 이루어 자신이 김 전 대통령의 아류라는 세간의 평가도 바뀌리라 여긴다.
대북한 유화정책의 성공은 그의 통치에 중요한 뜻을 부여할 것이다. 네 해 동안의 실정으로 시민들로부터 낮은 평가를 받는 터라 자신의 통치에 뜻을 부여하려는 갈망이 무척 클 것이다. 아마도 그것이 ‘퍼주기’라 불린 일방적 원조를 하면서 정상회담을 추구한 까닭일 터이다.
정치가에게 대통령이 된 것은 자신의 삶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에 뜻을 부여하려 애쓰므로 대통령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통치에 뜻을 부여하려 애쓴다.
그러나 그것은 위험한 욕망이기도 하다. 한 나라의 정책들은 나라의 장기적 이익을 고려해서 추진되어야 한다. 정책들이 정치 지도자의 짧은 시평(時平; time-horizon)에 맞추어 추진되면 개인적 일정과 국가적 일정의 괴리에서 문제들이 나온다.
우리와 공존이 어려운 이념과 체제를 지녔고, 우리를 침공해서 비참한 전쟁을 일으켰고, 줄곧 적대적 태도를 보여왔으며, 군비 확장에 자원을 많이 투입해서 핵무기까지 개발한 이웃 나라와의 관계를 바꾸는 일에는 단임 대통령의 짧은 시평이 당연히 큰 문제가 된다.
전체주의 사회의 독재자는 임기가 정해진 자유주의 사회의 정치 지도자보다 시평이 훨씬 길다. 따라서 둘 사이의 협상에선 늘 독재자가 유리하고 그 점을 독재자는 잘 이용한다.
이런 위험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북한 유화정책에서 아프게 드러났다. 그는 정상회담이 빨리 이루어지기를 열망했다. 통치에서 대북한 유화정책을 핵심으로 삼았고, 이미 나이가 많았지만 임기가 끝난 뒤에도 정치 무대의 한가운데에 남으려는 욕망이 워낙 컸으므로 그는 조급했다. 실제로 다급한 쪽은 북한 정권이었지만 그들은 김 전 대통령의 조급함을 잘 이용했다. 그래서 김 전 대통령은 북한에 줄 뇌물의 불법적 송금까지 허용했고 북한에 대한 대규모 원조를 강행했다.
그렇게 제공된 자금은 북한 정권이 위기를 넘기도록 도왔고 장거리 미사일과 핵무기의 개발을 가능하게 했다. 만일 김 전 대통령이 자신의 욕심과 일정에 따라 대북한 정책을 추진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생존에 짙은 그늘을 드리우는 ‘핵무기를 갖춘 북한’은 나타나지 않았을 터이다.
자신의 통치에 뜻을 부여하려는 정치 지도자의 원초적 욕망에 대해 시민들이 잘 아는 것은 중요하다. 바로 그런 욕망이 임기가 끝나가는 대통령으로 하여금 ‘역사의 평가’를 자주 입에 올리게 만든다. 근자에 노 대통령이 ‘역사’라는 말을 자주 언급하는 것도 바로 그런 사정 때문이다. 시민들은 대통령의 그런 욕망에 따르는 위험을 잘 알아야 하고 나아가서 대통령에게 자신들이 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