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희대 교수 권영준 | ||
우리 사회에 대화와 타협이 부재한 이유로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서로 다른 생각을 이해하거나 존중하려 하지 않고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상대방을 꺾어서 자기와 같게 만들거나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둘째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여 대화를 통해 협력을 약속했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함으로써 더 큰 피해를 경험한 경우에는 약속을 믿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현상이 심화되어 극단적인 방법으로 싸우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상호간의 불신 속에서 타협과 협력 부재로 인한 공멸현상은 잘 알려진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로도 비유된다. 두 사람의 공범이 모두 잡범으로 잡혀 왔을 때 대형범죄사건의 잠재적 혐의자로서의 증거가 불충분하여 진술에 의해서 수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는 경우에, 수사관은 진실을 사실대로 진술하는 범인에게는 형량을 감해 주어 방면하는 반면에 사실대로 진술하지 않는 범인에게는 가중처벌을 하는 예가 있다. 이 때 두 사람의 공범을 서로 대화하지 못하게 하면 상대방에 의해 자신의 형량이 가중되는 것을 염려하여 두 사람 모두 서로에게 불리한 상황으로 진술하게 된다. 이 경우는 인위적으로 대화를 못하게 했기 때문에 생기는 1차적 죄수딜레마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발생하는 죄수 딜레마적 공멸문제는 오히려 공범 두 사람을 서로 대화할 수 있게 한 경우에 발생하는 2차적 죄수딜레마 문제로 심각한 갈등을 유발하는 것이다. 즉 두 사람의 공범이 서로 대화를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이 약속을 파기하는 경우 나머지 범인이 받게 되는 가중처벌문제가 오히려 대화를 신뢰하지 못하게 하는 심각성을 야기하는 것이다.
두 사람이 모두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면(공범 모두 진실을 진술하지 않으면) 대형사건에 대해서는 증거불충분으로 두 사람 모두 잡범으로만 가볍게 처벌받음에도 불구하고, 만약에 상대방이 약속을 파기하고 진실을 고백하면 자기만 크게 당한다는 우려 때문에 진실을 고백할 수밖에 없는 2차적 죄수딜레마에 봉착하는 것이다.
이 경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진정한 대화와 협력의 전제조건인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부재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든 갈등의 배경에는 대화의 부족도 문제이지만 대화의 전제조건인 신뢰부족이 더 큰 문제로 등장한다.
그렇다면 신뢰는 대화와 협력의 선결조건으로서 가장 중요한데 어떻게 해야 신뢰가 생길 수 있는가.
죄수딜레마 게임의 해법에서는 여러 가지 방안들이 연구되지만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한 가지는 계속적 게임을 통해 신뢰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대선을 앞두고 새로운 정부를 선택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대선 후보에 대한 여러 중요한 조건들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진정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정부를 만들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춘 인물을 뽑아야 한다는 것으로 그래야만 21세기 무한 경쟁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