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문재인을 향한 권력 대이동의 빗장이 열린다. 시기는 6·13 지방선거 직후다. 현재 권력인 문재인 대통령이 당분간 강력한 구심력을 형성하겠지만, 한쪽에선 여권 권력구도 재편이 가시화될 전망이다. 특히 지방선거 이후 단행될 내각 개편을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차기 당권 등의 과정에서 포스트 문재인을 노리는 인사들의 움직임이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관전 포인트는 네 개의 축으로 움직일 포스트 주자의 물고 물리는 역학관계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 31일 오후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문 대통령, 이낙연 국무총리, 임종석 비서실장. 사진=청와대
포스트 문재인을 결정하는 네 개의 축은 ‘청와대 참모·내각 인사·지방자치단체장·당 권력’이다. 청와대 참모진에선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내각에선 이낙연 국무총리, 지자체장에선 6·13 지방선거 최대 격전지 승리자, 당 권력에선 차기 당대표 등이 네 개의 축을 구성하는 핵심 인사다. 이중 여권 내부권력 이동의 첫 번째 분수령은 내각 및 청와대 참모진 개편이다.
앞서 이 총리는 5월 27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유럽순방을 동행한 기자들과 한 오찬간담회에서 “부분 개각과 관련해 청와대와 이미 기초 협의를 했다”고 밝혔다. 일단 내각 및 청와대 조직 개편과 관계없이 임종석 비서실장의 입지는 확고하다. 지난해 5·9 대선 때 문재인 캠프 좌장 역할을 맡은 그는 문 대통령의 신임을 전폭적으로 받고 있다. 임 실장은 지난해 문 대통령의 특명을 받고 아랍에미리트(UAE)를 비밀리에 방문했다. 문 대통령은 매일 오전 임 실장과 티타임으로 업무를 시작할 만큼, 둘의 관계는 각별하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연초 평창동계올림픽 과정에서도 임 실장이 밑그림을 많이 그린 것은 사실”이라며 “이후 남북 관계가 물꼬를 트면서 임 실장이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으로 역할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임 실장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청와대나 친문 인사들에게 ‘2인자’에 대해 물으면 대개 임 실장을 거론한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나,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등을 언급하는 경우도 있지만, 임 실장만큼은 아니다.
그러나 차기와 관련해 임 실장에 대한 회의론도 고개를 든다. 야권 한 인사는 “임 실장이 차기? 글쎄…”라며 ‘대망론’에 의문을 표했다. 제아무리 친문계가 밀어줘도 대중성에서 약한 고리를 가진 임 실장이 대권 후보로 떠오를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 근거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임 실장이 차기 대권주자로 언급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을 들었다.
또한 임 실장은 재선에 불과하다. 17대 국회를 끝으로 10년 넘게 국회 입성에 실패했다. 임 실장이 차기 대권주자로 거듭나기 위해선 여의도 입성이나 당 귀환 수순 등이 필요하지만, 순조로울지는 미지수다. 2012년 19대 총선 때 한명숙 당시 민주통합당(현 민주당) 대표는 임 실장을 당 사무총장에 꽂으려고 했지만, 당 주류와 비주류 모두 반발하면서 끝내 무산됐다. 민주당 한 보좌관은 “한명숙 체제가 당 내부에서부터 흔들린 분기점이었다”고 회고했다. 임 실장이 끝내 대중성을 극복하지 못할 경우 친문계는 조국 민정수석 등 플랜B 찾기에 나설 수도 있다. 왕실장 논란에 휩싸인 장하성 정책실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등도 정권 실제로 꼽히지만, 이들은 전형적인 참모라는 점에서 포스트 문재인과는 거리가 멀다.
내각에선 단연 이 총리가 돋보인다. 그가 본격적으로 차기 대권주자 반열에 오른 것은 ‘안희정 미투’ 파문 때부터다. 또한 국회 상임위원회 등에서 ‘사이다 발언’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친문 지지층에서도 이 총리를 차기 대통령감으로 지목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김미현 알앤써치 소장은 “이 총리는 안희정 전 지사의 정치권 퇴장에 따른 최대 수혜자”라고 말했다. 차기 대권주자 여론조사에서 이 총리는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그룹에선 이 총리가 책임총리와는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평가 절하하지만, 여권에선 그를 ‘내각 군기반장’으로 치켜세운다.
문 대통령과 격주로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 이 총리는 장관들이 답변이 시원치 않을 경우 “이걸 보고라고 하느냐”라고 불호령을 내린다. 이 총리는 쓰레기 대란 당시 김은경 환경부 장관을 향해 “미약한 정책은 수필이지 정책이 아니다”라고 질타했다. 일부 장관들은 이 총리 때문에 ‘보고 노이로제’에 걸렸다고 한다. 비문(문재인)계 관계자는 “4선에다가 도지사(전남), 국무총리까지 주요직을 거친 경험이 제일 큰 강점”이라며 “어렵다고 시류를 쫓지 않는다는 점도 플러스요인”이라고 말했다. 이 총리는 한때 손학규계의 핵심이었다.
내각에서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들어올 자’와 ‘나갈 자’다. 교체 대상은 법무부(박상기), 국방부(송영무), 환경부(김은경), 여성가족부(정현백), 산업통상자원부(백운규) 등이다. 이 중 일부는 민주당 중진급이 꿰찰 것으로 보인다. 새로 입성하는 장관 중 포스트 문재인에 근접하는 인사가 나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또한 민주당 차기 당권구도와 맞물려 김부겸 행정안전부·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등의 전당대회 차출 여부도 관심사다. 당 일부 인사는 이들의 차출을 요청했다. 이들이 민주당 차기 당권을 거머쥔다면, 대권 급행열차에 올라탈 가능성이 크다. 4선의 김부겸 장관은 대구 수성갑, 3선의 김영춘 의원은 4선의 부산 진갑으로, 둘 다 영남권 인사다.
현재 친문 직계인 홍영표 의원이 민주당 원내대표에 오른 데 이어 친노(친노무현) 중진 문희상 의원은 20대 후반기 국회의장직 후보로 선출됐다. 비문계 한 인사는 “김부겸·김영춘 장관은 친노·친문으로 채워진 당 주요직의 색깔을 뺄 수 있는 인사라는 점에서 매력적”이라며 “당 내부에선 둘 중 한 명이 나오는 것으로 정하고 다시 당내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과 내부 조율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만 이들이 출마를 강행할지는 미지수다. 최근 김부겸 장관은 언론에 차기 당권주자로 거론되자 “전당대회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말라”고 측근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김영춘 장관도 사석에서 이미 준비 중인 86그룹 후보들을 언급하면서 출마에 선을 그은 것으로 알려졌다. 차기 당권을 준비 중인 86그룹 인사로는 송영길, 이인영 의원 등이 있다. 6월 중순 현재 거론되는 차기 당권주자만 15명을 훌쩍 넘는다. 친노 좌장 이해찬 의원도 출마설에 휩싸였다. 이 지점은 관리형 대표냐, 대권형 대표냐를 결정하는 여권 내부권력 구도의 핵심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민주당 차기 전당대회의 변수는 첫째도, 둘째도 친문계의 전략적 선택”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지자체장의 출범도 권력 시프트의 핵심축이다. 특히 수도권과 최대 격전지인 경남지사에서 승리한 자는 차기 대권열차 티켓을 거머쥔다. 3선 도전에 나선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이재명 경기지사 후보와 김경수 경남지사 후보의 당선 여부는 판을 뒤흔들 요소다. 박원순·이재명 후보가 당선된다면, 당내 비문계 구심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김 후보가 경남지사 입성에 성공할 경우 친문계 새 아이콘으로 부상할 수도 있다.
약점도 있다. 박 후보는 ‘대중성’, 이 후보는 ‘비토 세력’, 김 후보는 ‘참모 이미지’ 등이 약한 고리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청와대 참모진 등은 당내 조직력, 지자체장 등은 대중성 등에서 각각 비교우위를 가진다”라며 “결국 여권 내부권력 구도는 조직력과 대중성의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국회로 복귀한 정세균 전 국회의장 행보도 관심사다. 정 의원은 6월 1일 민주당에 복당한 직후 6·13 지방선거 유세 일정을 시작했다. 주변에선 선거 유세에 대한 정 의원 본인의 의지도 크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정치권의 시선은 정 의장의 향후 행보에 쏠린다. 국회의장 후 정계은퇴하는 관례를 깰 가능성이 커서다.
그는 민주당 차기 당권 후보군으로도 거론된다. 일각에선 정 의장이 차기 대권 도전을 할 것으로 전망한다. 정 의원 측 한 관계자는 “지방선거가 끝나면 그간 의장직을 수행하느라 챙기지 못했던 지역으로 내려가서 주민들과 소통할 것”이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국회 한 관계자는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겠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