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는 이날 마산구장에서 삼성에 3연전 싹쓸이 패배를 당했다. 세 경기 내내 투타가 모두 무너져 무기력한 플레이를 했다. 팀 성적도 바닥을 쳤다.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했고, 승률은 0.339(20승 39패)까지 떨어졌다. 반등의 계기를 찾기는커녕 점점 나락으로 떨어져만 갔다.
하지만 이날의 발표가 놀라웠던 이유는 NC를 떠나는 주인공이 다름 아닌 김경문 감독(60)이었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이날로 프로 통산 1700번째 경기를 지휘한 베테랑 사령탑이다. 2008 베이징올림픽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전승 금메달을 일궜고, 두산 감독 시절 팀을 세 차례나 한국시리즈로 이끌었다. 무엇보다 2011년 8월 신생팀 NC의 초대 사령탑으로 부임해 1군 진입 2년 만인 2014년 팀을 포스트시즌 무대에 올려놓는 지도력을 발휘했다. NC는 그 후 지난해까지 4년 연속 가을 야구를 했고, 2016년엔 한국시리즈 준우승까지 해냈다. 김 감독은 NC의 역사를 함께한 산 증인인 셈이다.
그런 김경문 감독조차 ‘피도 눈물도 없는’ 프로 세계의 칼날을 피해 가지는 못했다. NC는 보도자료에서 “김 감독은 향후 구단 고문으로서 호칭과 예우를 받는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전임 사장과 전임 관리본부장에게 ‘고문’이라는 자리를 준 상황에서 이 같은 조치가 과연 김 감독에 대한 ‘예우’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일요신문 DB
# NC는 왜 초대 감독 김경문을 경질했을까
보도자료 속 애매모호한 표현과 달리, 김경문 감독이 ‘경질’됐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김 감독은 통산 896승 774패 30무라는 성적을 기록 중이었다. 개인 통산 900승에 단 4승만을 남겨 놓은 상태였다. 굳이 이 시점에 스스로 물러나겠다는 결단을 내렸을 리 없다. 무엇보다 그동안 야구계에는 김 감독과 NC 구단의 갈등이 심해졌다는 소문이 익히 떠돌았다. 새 외국인 투수 로건 베렛(28)에 대한 견해 차이가 그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고 알려져 있다.
사실 김경문 감독은 그동안 베렛을 두고 구단과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을 해왔다. NC가 올 시즌 새 외국인 투수로 베렛을 택한 이유는 잔부상이 많은 에릭 해커와 제프 맨쉽 대신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고 많은 이닝을 던져줄 ‘이닝 이터’를 원해서였다. 하지만 베렛은 입단 전 메디컬 테스트에서 팔 상태에 문제가 드러났다. NC는 계약을 파기하는 대신 60만 달러였던 보장 금액을 30만 달러로 낮춰 사인하는 ‘모험’을 선택했다. 결과는 실패. 베렛은 기대와 정반대의 결과를 냈다. 개막 두 달이 흐른 시점까지 경기 평균 5이닝을 채 소화하지 못했다. 심지어 또 다른 외국인 투수 왕웨이중 역시 불펜 투수 출신이라 꼼꼼한 관리가 필요한 상황. 불펜까지 연이어 피로 누적으로 무너지자 감독의 답답함은 커져 갔다. 결국 김 감독은 구단에 베렛의 교체를 요청했다.
하지만 구단 수뇌부는 “좀 더 지켜보자”고 만류했다. 패수가 늘어나면서 한시가 급했던 감독은 이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5월 14일 베렛을 1군 엔트리에서 제외했다. 베렛이 그동안 부진하기는 했지만,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었다. 김 감독은 취재진에게 베렛의 복귀 시점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국내 선수로 선발진을 꾸려 보겠다”는 말로 무기한 2군행을 암시하기도 했다. 구단의 ‘유보’ 결정에 초강수를 둔 셈이다.
황순현 NC 대표이사는 이 같은 김 감독의 행동에 더 화가 났다. 결국 삼성과 홈 3연전 스윕 패를 계기로 결단을 내렸다. 동시에 프로 사령탑으로 잔뼈가 굵은 김경문 감독의 대행으로 프로에서 선수와 지도자 경험이 없는 유영준 단장을 내세웠다. 유 감독대행은 NC 지휘봉을 잡자마자 2군에 있는 베렛의 몸 상태부터 확인했다. 곧바로 1군에 불러 올려 선발 로테이션에 다시 합류시켰다. ‘김경문의 그림자’를 지우고 현장을 좌지우지하겠다는 구단의 뜻을 그대로 실천했다.
김경문 감독은 스스로 주춧돌을 놓고 높은 탑을 쌓아 올린 NC에서 그렇게 등 떠밀리듯 쫓겨났다. 일반적으로 구단이 시즌 도중 사령탑을 교체할 경우, 감독에게 남은 계약 기간 동안 잔여 연봉을 지급해야 한다. 2019시즌까지 계약한 김 감독은 1년 반 동안의 연봉을 모두 받을 권리가 있다. 반대로 감독이 자진 사퇴를 했을 경우엔 구단이 잔여 연봉을 지급해야 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그 팀을 오랜 기간 맡았거나 큰 성과를 거뒀던 감독에게는 구단들이 자진해서 “남은 연봉을 모두 드리겠다”고 나서는 게 일반적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구단이 감독의 퇴진을 ‘경질’이 아닌 ‘자진 사퇴’로 굳이 포장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돈’ 때문이 아니다. 구단의 선택에 따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사진=KIA 타이거즈
그동안 KBO 리그 역사에선 계약 기간을 1년 이상 남긴 감독이 중도 퇴진을 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시작은 1986년 35세라는 젊은 나이에 역대 최연소 프로 사령탑이 된 허구연 전 청보 감독부터였다. 야심차게 프로 구단 감독이 됐지만, 성적은 의욕을 따라가지 못했다. 허 전 감독은 그해 5월 11일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다가 6월 18일 다시 지휘봉을 잡았고, 그 후 두 달이 채 지나기도 전인 8월 6일 다시 퇴진하는 진풍경을 남겼다. 감독 통산 성적은 57경기에서 15승 2무 40패(승률 0.273). 청보가 워낙 약팀이라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이렇게 과거에는 중도 퇴진이 ‘성적을 내지 못한 감독’이 밟는 수순으로 여겨졌다면, 순위 경쟁이 더 치열해진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팀을 포스트시즌, 더 나아가 한국시리즈까지 이끌고도 이듬해 물러나는 감독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선동열 전 삼성 감독은 2009 시즌이 채 끝나기도 전에 5년 장기 재계약에 성공하고 2010년부터 2014년까지 팀을 이끌기로 했다. 하지만 계약 첫해인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SK에 4전 전패로 패해 준우승한 뒤 돌연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구단은 ‘용퇴’라는 표현을 썼지만, 야구계에선 “한국시리즈에서 보여준 무기력한 경기력과 패배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선 감독의 모습이 ‘일등주의’를 추구하는 삼성 그룹에 곱게 보이지 않았다”는 후문이 돌았다.
두산 시절 김경문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김 감독은 2004년부터 2010년까지 두산을 이끌면서 팀 컬러인 ‘화수분 야구’를 정립시켰다. 2007년과 2008년,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도 했다. 다만 2011년이 고비였다. 포스트시즌 단골팀이던 두산이 시즌 중반 7위까지 처졌고, 서서히 구단 수뇌부와 불화설도 불거졌다. 김 감독은 잠실 라이벌인 LG와의 5월 5일 어린이날 매치에서 대패한 이후 꾸준히 사퇴 의사를 밝혔고, 결국 그해 6월 13일 자진해서 두산 지휘봉을 내려놓고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떠났다. 물론 공백은 길지 않았다. 2개월 만에 NC 초대 감독으로 복귀했다.
김진욱 전 두산 감독은 2012년 김경문 감독 후임으로 두산 지휘봉을 잡은 뒤 2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2013년엔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을 했고, 시즌 종료 후 선수들을 이끌고 마무리캠프까지 떠났다. 하지만 “우승할 수 있었던 결정적 순간에 승부사 기질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내부 불만이 계속 터져 나왔다. 결국 감독 교체 시기로는 다소 늦은 11월 26일 경질됐다. 감독이 마무리캠프까지 다녀온 뒤 교체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라 당시 여러 의혹이 쏟아졌다. 설상가상으로 두산은 김 감독 후임으로 재일교포 송일수 감독을 택하는 ‘잘못된 선택’을 했다. 송 감독도 1년 만에 물러났다.
김기태 전 LG 감독은 취임 첫해인 2012년 반전의 토대를 닦았다. 2013년엔 마침내 팀을 정규시즌 2위로 이끌었다. ‘가을 야구’라는 LG의 10년 묵은 한을 풀었다. 그러나 11년 만에 치른 포스트시즌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갑작스럽게 사퇴해 충격을 안겼다. 2014시즌이 시작되자마자 LG가 최하위로 처지면서 감독의 스트레스가 깊어진 탓이다. 결국 4월 23일 대구 삼성전 더그아웃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경기 종료 후 LG는 김기태 감독의 자진 사퇴를 발표했다. LG는 이후 김기태 감독을 1군 엔트리에 계속 올려놓은 채 설득에 나섰지만, 김 감독은 아예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떠나 버렸다. 공식적으로는 김 감독이 5월 12일까지 LG 지휘봉을 잡은 것으로 기록돼 있는 이유다.
팬들이 직접 원하는 감독을 선택해 캠페인을 벌이거나, 반대로 구단을 압박해 기존 감독을 퇴진시키는 상황까지 벌어진 것도 2010년 이후의 새로운 변화다.
사진=한화 이글즈
김성근 전 한화 감독은 사실상 팬들이 지휘봉을 쥐어준 감독이었다. 한화가 ‘우승 청부사’ 김응용 감독 지휘 아래서도 만년 하위권에 머물자, 팬들은 약팀의 기량을 끌어 올리는 데 능력을 발휘해온 김성근 감독을 ‘모셔 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김 감독은 팬들의 바람대로 한화 사령탑에 올랐다. 하지만 앞선 지도자 생활에서 김 감독을 따라 다녔던 ‘혹사 논란’은 한화에서도 변함없이 이어졌다. 독선적인 리더십과 프런트와의 대립도 여전했다. 반면 성적은 위로 올라가지 않고 제자리걸음을 했다. 지난해 5월 23일 결국 김 감독과 한화는 결별했다. 이 과정에서도 ‘자진 사퇴’냐, ‘경질’이냐를 놓고 감독과 구단 사이에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상처뿐인 동행이었다.
광주의 ‘전설’인 선동열 전 KIA 감독의 퇴진도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통산 146승과 132세이브, 평균자책점 1.20을 기록한 선 감독은 2012년 광주 팬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고향팀 KIA에 부임했다. 하지만 결과는 명성에 미치지 못했다. KIA는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KIA 팬들의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3년 계약 기간 종료 후 재계약에 성공했지만, 팬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일부 몰지각한 팬들이 선 감독 가족의 휴대전화로 욕설 메시지를 보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선 감독은 계약서에 사인한 지 열흘 만에 자진사퇴했다. 재계약한 감독이 첫 시즌을 치르기도 전에 물러난 초유의 사태였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메이저리그’ 아지 기옌 경질 뒷얘기…독재자 ‘카스트로 찬가’ 한번에 훅 베네수엘라 출신인 아지 기옌 전 감독(54)은 2004년 40세라는 젊은 나이에 시카고 화이트삭스 사령탑에 올랐다. 그 유명한 ‘블랙삭스 스캔들’ 이후 90년 가까이 우승과 인연이 없었던 화이트삭스를 부임 2년 만인 2005년 월드시리즈 정상에 올려놓았다. 최초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룬 히스패닉 감독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그해 아메리칸리그 감독상을 수상했고, 일찌감치 명장 대열에 합류했다. 2011년까지 8년간 화이트삭스를 지휘하면서 승률 5할을 웃도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냈다. 다만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에 함께 몸담은 미네소타와 디트로이트가 너무 강한 게 문제였다. 우승 이후 포스트시즌 진출은 2008년 한 차례가 전부. 결국 화이트삭스 지휘봉을 내려놓고 2012년 마이애미 감독으로 이적했다. 문제는 바로 이 시기에 벌어졌다. 기옌 감독이 타임지와 인터뷰에서 “피델 카스트로를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발언을 한 것이다. 마이애미는 독재 정권을 피해 조국을 등진 쿠바 망명자들이 대거 거주하고 있는 지역이다. 연고 야구단 감독이 쿠바 독재자였던 카스트로를 찬양하는 발언을 했다는 소식에 파문은 일파만파 번졌다. 기옌 감독은 이 발언이 보도된 뒤 곧바로 “술에 취해 한 말이었다”며 진화에 나섰다. 기자회견을 열어 “나 스스로 라틴 커뮤니티를 배반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 발언 때문에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며 “카스트로가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독재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 놀랍다는 말을 하려 했지만 단어 선택이 잘못됐다”고 사죄와 해명을 했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은 변함없이 “기옌 감독이 사퇴해야 한다”고 들고 일어났다. 일부 쿠바 망명자들은 마이애미 홈구장 앞에서 기옌 감독의 퇴진을 외치는 시위에 나섰고, 쿠바 출신들로 구성된 마이애미 일부 민간단체는 “기옌 감독이 사임할 때까지 마이애미 경기를 보이콧하겠다”고 반발했다. 야구장이 위치한 데이드 카운티의 의장까지 나서 퇴진을 요구했다. 처음에는 “감독의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고 옹호하던 마이애미 구단도 결국 5경기 출전 정지라는 자체 징계를 내렸다. 버드 셀릭 당시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는 이 결정을 지지하면서 “메이저리그는 아주 중요한 사회적 책임을 지고 있다. 기옌 감독의 발언은 마이애미는 물론이고 세상 어디에서도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기옌 감독은 징계를 모두 소화한 뒤 다시 마이애미 더그아웃에 복귀했지만, 팬들의 시선은 예전처럼 곱지 않았다. 무엇보다 마이애미는 그해 69승 93패로 바닥을 쳤다. 결국 구단주 제프리 로리아는 한 시즌 만에 기옌 감독을 해고했다. 이후 기옌 감독은 메이저리그 감독으로 복귀하지 못했다. 트레이 힐만 감독이 SK로 부임하던 2016년 말 에이전트를 통해 “한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지만, 무산됐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