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향 수원대 교수 | ||
“오늘날 아이들의 세계는 TV와 게임으로 특징지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유년시절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네 가지 요소들이 결핍된 상태에서 보냅니다. 그 요소는 물, 불, 공기, 흙입니다. 자동차 배기가스만을 호흡하는 아이들에게는 공기가 부족하고, 정수된 물만 마시기 때문에 물이 부족합니다. 아스팔트 위만 걷기 때문에 흙이 부족하고, 또한 불이 부족합니다. 가스레인지의 불꽃만 들여다보기 때문입니다.”
이보다 명쾌할 수 있을까.떠오르는 태양에 황홀해본 적이 없고 햇살에 피부가 열리는 경험이 없다면 불이 부족한 것이다. 당연히 열정이 병들고 충동이 병든다. 공기가 부족하면 기진맥진 쉬 피로하고, 물이 부족하면 허기가 생긴다. 흙이 부족하면 신경증적인 이기주의자가 되기 쉽다. 그 병들은 소리 높이고 있는 것이다. 너의 고향은 자연이라고, 자연으로 가라고.
뭔가 답답하고 지리멸렬한 느낌을 받을 때 나는 산으로 간다. 이상하다. 1시간만 걸어도 벌써 피부가 열리고 온몸의 숨구멍들이 열리면서 답답하게 갇혀서 질식할 것 같은 내 속의 느낌들이 모두모두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것 같다. 그러면 자연스레 내 안의 분노를, 두려움을 살피게 된다. 내 안의 분노를 찬찬히 살피면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보이고, 내 조급증을 찬찬히 살피면 내가 욕심내고 있는 것이 보인다. 내가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것들을 찬찬히 살피면 내 노이로제가 보인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 수다스러워도 착하고, 말이 없어도 불안하지 않다. 그러고 보면 그것은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특징이라기보다 산의 정화능력인 셈이다. 마침내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우리는 흙을 밟을 수 있을 때 안온함을 느낀다. 그 안온함 위에서 우리는 기지개를 켜듯 억압된 마음자리를 쭉쭉 펴는 것이다.
그 흙을 덮어버린 아스팔트는 현대문명의 상징이다. 직선적이고 빠르고 메마르고 위압적이고 단절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아스팔트를 거둬낼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중에 아스팔트 위에서 매연을 마시며 사는 우리는 주말엔 산으로 간다. 그래서 서울의 그 좋은 산들은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시달린다.
왜 산에 오르면 정상까지 올라야 할까. 아직도 우리는 정복이라는 제국주의적 개념을 일상화하고 있는 것일까. 삼각산처럼 서울의 상징인 산들에는 산 낮은 곳에 옛길을 복원해서 산책길 혹은 순례길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나지막하고 편안하고 부담스럽지 않아 노약자도 장애인도 함께할 수 있는 숲길을.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자기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길을.
먼저 서울의 중심 삼각산에 그 길을 만들면 어떨까. 청계천 성공 이후 다른 지자체에서 개천을 복원하여 시민들에게 돌려주듯이 삼각산 순례길이 성공적이어서 여기저기 작은 산들을 저 낮은 곳에 산책로가 있는 아름다운 숲을 품게 할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