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앨범을 내며 활동을 시작한 엘리엇 스미스는 스타덤에 오른 뒤에 우울증에 시달렸다. 1997년에 ‘이더/오어’ 앨범 작업을 할 때는 당시 연인이자 기타리스트인 조애너 봄과 결별하면서 힘든 시절을 보냈고,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다행히 나뭇가지에 걸려 목숨을 건지긴 했지만 위험천만한 충동적 행동이었다. 이후 영화 ‘굿 윌 헌팅’(1997) OST에 참여했고, 주제가 ‘Miss Misery’로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이런 성공은 그를 더욱 정신적으로 압박했고, 그는 불안함을 이기기 위해 술에 빠져들었으며, 이후 헤로인까지 손을 대었고, 결국 클리닉에서 치료를 받게 된다.
2002년 제니퍼 치바라는 여성과 연인이 된 엘리엇 스미스는 새로 시작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술과 마약에서 헤어 나오는 건 적잖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고, 2003년이 되었을 때 그는 새로운 앨범을 준비할 정도로 상당 부분 회복했다.
엘리엇 스미스의 죽음에 대해 경찰은 자살로 결론을 냈지만 여전히 타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때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난다. 2003년 10월 21일 엘리엇 스미스가 자살한 것이다. 상황은 이렇다. 스미스와 제니퍼 치바가 함께 사는 캘리포니아의 자택. 이웃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들은 아침부터 거리에 고함 소리가 들릴 정도로 크게 다투었다고 한다. 치바의 증언에 의하면 정오 즈음이 되었을 때, 그녀는 욕실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샤워를 했고, 이때 문 밖에선 스미스가 마치 절규하듯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문을 열어 보니, 스미스는 자신의 가슴에 칼을 꽂은 채 쓰러져 있었다. 치바는 황급히 911에 전화를 걸었고 병원에 12시 18분에 도착했지만 1시 36분에 결국 스미스는 사망한다. 포스트잇에 짧은 메모로 남긴 유서가 발견되었다. “미안해. 당신의 엘리엇이. 신께서 용서하시길” 경찰은 자살로 발표했다.
그런데 두 달 후 발표된 검시 결과는 수많은 질문을 제기했고, 그 내용은 어쩌면 엘리엇 스미스가 자살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암시했다. 일단 엘리엇의 몸에선 알코올이나 어떤 불법적 약물도 발견되지 않았다. 혈액에 항우울제, 항불안제, ADHD 치료제 성분이 있긴 했지만, 합법적인 처방전에 의한 것이었다. 당시 엘리엇은 앨범 작업을 앞두고 한 달 넘게 술과 마약은 물론 육류마저 끊은, 매우 건강한 상태였다.
문제는 스스로 가슴을 칼로 찔러 죽었다는 사실이었다. 통계에 의하면 칼이나 날카로운 흉기로 스스로를 찔러 죽는 경우는, 전체 자살의 2퍼센트에 지나지 않았고, 그럴 경우에도 대부분 목을 베는 방식을 선택하지 가슴을 찌르는 경우는 없다. 그리고 이런 방식의 자살은 대부분 깊은 밤이나 새벽에 일어나며 쉽게 눈에 띄는 곳보다는 은폐된 공간에서 이뤄지는데, 스미스는 정오 즈음에 연인이 샤워 중인 욕실 문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확률적으로 엘리엇 스미스의 죽음은 매우 희귀한 사례인 셈이다.
엘리엇 스미스(오른쪽)와 연인이자 그의 죽음을 목격한 제니퍼 치바.
상처도 이상했다. 스스로 가슴을 칼로 찌른다고 할 때, 굳이 두 번이나 찌를 필요가 있었을까? 자살의 경우 상박을 찌르기 마련인데, 마치 누군가에게 찔린 것처럼 흉곽에 상처가 있었던 것도 석연치 않았다. 찌른 방향은 완전한 수직은 아니고 아주 약간 아래로 향하고 있었는데, 검시관은 “만약 수직으로 찔렸다면 100퍼센트 타살”이라고 소견을 밝혔다.
첫 번째 상처는 5번 갈비뼈 쪽을 관통해 흉강으로 들어갔고, 두 번째 상처는 흉골의 왼쪽 끝에 구멍을 냈는데, 바로 이 두 번째 상처가 조금 이상했다. 스스로 칼로 찔러 죽는 경우, 일반적으로 뼈처럼 딱딱한 부분을 찌르진 않는다는 것. 그런데 두 번째 상처는 13~18센티미터 정도의 심각한 깊이였고, 게다가 뼈 부분을 건드려 작은 구멍을 만들었다. 살인이라면, 이런 식의 상처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법의학적 견해였다. 결정적인 건 ‘주저흔’이었다. 이것은 칼로 찌를 때 약간의 주저함 때문에 만들어지는 흔적인데, 자살의 경우 대부분 주저흔이 나타난다. 죽기 전에 망설이는 게 인간의 심리이고, 그 심리가 상처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미스에겐 주저흔이 없었다. 그리고 왼쪽 손바닥과 오른쪽 팔죽지에 작은 칼 자국이 있었는데, 이것은 마치 누군가의 공격을 막으려다 생긴 것처럼 보였다.
결과가 발표되자 스미스의 팬들은 타살 가능성을 제기했고, 최초 발견자이자 당시 동거인인 제니퍼 치바를 용의선상에 올렸다. 하지만 경찰은 더 이상 수사하지 않았고, 자살로 단정 내린 뒤 사건을 종결했다. 그리고 약 1년 후인 2004년 7월 30일, 제니퍼 치바는 죽은 연인의 가족을 상대로 스미스가 낸 음반 수익의 15퍼센트(100만 달러 이상)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스미스와 사실혼 관계였기에 자신도 유족이며, 2000년부터 매니저와 에이전트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 치바의 주장이었다. 법정 싸움은 2007년까지 이어졌지만 결국 그녀는 재판에서 졌다. 한편 2013년, 스미스의 10주기를 맞이해 온라인 음악 매거진 ‘피치포크’는 음반 프로듀서인 래리 크레인을 인터뷰했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 11월 중반에 스미스의 앨범 믹싱을 하기로 했고, 전화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곤 1주일 후에 자살을 했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