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을 알 수 없는 모란시장의 개들이 사육장 안에 남겨져 더위를 견디고 있다. 고성준 기자
가축시장으로 유명한 모란시장은 특히 ‘개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4일 찾은 모란시장은 전성기와 달리 손님의 발길이 끊어진 모습이 역력했다. 5일장이 서는 날이었는데도 시장과 인근 식당은 한산했다. 모란시장의 백미인 전시된 개를 바로 도축해 파는 가게 역시 찾아보기 어려웠다. 성남시가 2016년 12월 맺은 협약을 바탕으로 시장에서 개를 전시하고 도축하는 것을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문을 닫은 한 축산가게 앞에는 주인이 미처 챙기지 못한 개 사육장이 남아있다. 주민 너댓 명이 사육장 앞에서 개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사육장 안에는 먹이나 물이 남아있지 않았다. 치우지 않아 굳어버린 개똥만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사육장 밑에는 통통한 쥐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개를 구경하던 한 주민은 주머니에서 애견 간식을 꺼내 개들에게 나눠줬다. 그는 “애들이 먹지를 못해서 가엾지 뭐. 주인이 버리고 간 거 같아도 새벽 세 시쯤 되면 몰래 도축해서 개들 비명소리가 상당해”라고 귀띔했다. 문을 닫은 가게에서 새벽에 몰래 개를 잡고 있다는 것.
모란가축시장 상인들은 성남시와 합의해 개 도축업을 그만두고 업종을 전환했다. 성남시의 전업 컨설팅 등 조언을 받아 상인들은 가축업에서 활어회, 오리고기 등을 판매하는 식당 등으로 업종을 변경했다. 하지만 7명의 축산업자들이 시와의 합의를 철회하면서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시는 지난 5월 A 축산의 도축시설을 철거했으나 업자는 바로 다음 날 다시 도축시설을 들여와 개를 잡았다. 시는 6일 2차로 A 축산의 도축시설을 철거했다. 하지만 A 축산 대표는 성남시의 행정집행에 불복해 성남시와 소송을 벌이는 중이다.
애견인구가 늘어나고 동물을 가족으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며 개 도축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다. 더군다나 모란시장 주변에 택지개발이 이뤄지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며 마구잡이 도축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커졌다. 모란시장 상인들이 성남시로부터 시장 리모델링 등 혜택을 받아놓고 이제 와 다시 개 도축을 한다며 눈살을 찌푸리기도 한다.
시장 분위기는 여론과는 달랐다. 알려진 것과 달리 개 도축업자 22명 가운데 성남시의 모란시장 정비 협약에 합의한 사람은 15명에 불과하다. 7명은 초기 합의했다가 입장을 바꿨다. 상인들은 “성남시가 처음 제안했던 것과 협약 내용이 달라 합의를 할 수가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개고기를 평생 생업으로 이어온 상인들에게 전업을 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7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모란시장에 위치한 개 도축업소가 영업을 하고있다. 고성준 기자
시장의 한 상인은 “A 축산 대표가 악인은 아니다. 시 정책에 반발하는데 그 의견을 무시하고 시설을 철거해버리니 주변에서는 보기가 딱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장 상인은 “업종 전환한 사람 중에 장사가 안 돼 연간 수천만 원을 손해보는 이도 있다. 평생 개를 팔다가 다른 걸 하는데 잘될 리가 없다”고 말했다.
성남시는 모란시장 정비를 위해 2016년 김진흥 부시장을 단장으로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했다. 상인과 협의를 통해 모란시장 개 도축을 완전히 없앤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은 마하트마 간디의 말을 인용해 “동물에 대한 인식은 그 나라의 정신의식 수준의 척도”라며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대한민국의 모범을 성남에서부터 시작하겠다”고 선포했다. 반면 상인들은 개고기를 판매하는 것이 불법이 아닌데 성남시가 상인과 합의도 제대로 하지 않고 행정 집행을 하는 것에 반발하고 있다.
A 축산 대표는 “이동식 도축차량에서 개를 잡을 수 있는 줄 알았는데, 김 전 부시장과 면담을 하던 중에 개를 도축차량에서도 못 잡는다는 것을 알게 돼 합의하지 않았다”며 “개를 잡는 것이 생명을 죽이는 것인데 나도 그만두고 싶다. 합의나 보상 조건만 맞으면 당장이라도 관두겠다”고 말했다.
개고기를 취급해온 상인들은 ‘차라리 개고기를 불법화해 폐업시켜달라, 혹은 아예 합법화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개는 축산법상 가축으로 포함돼 있어 사육이 가능하지만 도축과 유통을 관장하는 축산물 위생관리법에는 빠져 있다. 이 때문에 개 도축은 합법도 불법도 아닌 무법지대에 놓여있다. 상인과 성남시가 갈등을 좁히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상인들은 ‘이럴 바엔 차라리 영업을 그만두고 보상을 받는 게 낫다’는 극단적 입장을 내놓지만, 법적 근거가 없어 시는 보상조차 진행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모란시장은 1960대부터 개고기 유통의 메카로 자리매김해왔다. 이런 모란시장의 개 도축 철폐는 대구와 부산 등 개고기 유통거점이 있는 지방자치단체도 주목했을 만큼 파격적이었다. 성남시는 파격 행정으로 주목받았지만 상인들과 합의도 이루지 않은 채 성과 알리기에만 열을 올렸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보신탕 집은 버젓이 영업을 하는데 개고기를 유통하는 도축업자에게만 철퇴를 내리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보신탕집에서 고기를 들여오기 위해 모란시장 인근의 태평동 일대에서 개 도축은 여전히 이뤄지고 있다. 당장 모란시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굴다리 밑에서 개 도축을 하고 피 등 폐기물을 하천에 떠내려 보내고 있다.
이재명 전 시장은 동물인권 차원에서 개 도축에 대해 접근한 것과 달리, 성남시는 택지개발이나 인근 입주민 민원에 따라 업무를 분담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근본적인 동물인권과는 거리가 먼 일관성 없는 행정이 이뤄지고 있다. 성남시 관계자는 “상인들이 원하는 합의조건은 들어주고 싶어도 법적 근거가 없어 어려움이 있다”며 “태평동 일대의 개 도축은 공원조성계획에 의해서 규제를 하기 때문에 공원담당 부서에서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
올림픽 땐 ‘뒷골목행’ 월드컵 땐 ‘수요 급락’…개고기 수난사 모란시장 상인들은 1960년대부터 전국에서 가장 질 좋은 개고기를 납품하던 자부심을 갖고 있다. 수요가 가장 많은 수도권 물량을 책임지던 모란시장은 전국 개고기 가격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마지막 남은 몇몇 도축업자들이 수도권 개고기 납품을 전담하고 있을 뿐이다. 개고기 하면 떠올랐던 모란시장이 쇠락하는 동안 개고기도 드러내놓고 먹지 못하는 이름이 됐다. 개장국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그 이름을 ‘영양탕, 보신탕’으로 대거 바꿔 달았다. 개고기집들은 뒷골목으로 쫓겨나거나 간판을 바꿔야 했다. 세계적 행사를 앞두고 개고기를 먹는 것이 자칫 국가 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가 교체되며 입맛 변화에 따라 개고기 수요는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육견업계는 2002년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개고기 수요가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고 보고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1000만 가구에 이르고, 동물인권이 강조되며 사람과 가까운 개를 먹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커진 것도 한몫을 했다. 또 관련 법규가 미비해 개를 보관하거나 도살하는 과정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위생이 나쁘다는 것도 개고기 수요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