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복거일 | ||
이것은 자연스러운 물음이 아니다. 자식 사랑은 하도 자연스러워서 우리는 그것에 대해 “왜 그런가”라는 물음을 던지지 않는다. 그러나 한 번 그 물음이 던져지면 우리는 그것이 깊은 뜻을 지녔음을 깨닫게 된다. 누구나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 유일한 예외는 자식이다. 찬찬히 살피면 그런 사정이 이 세상의 모습을 결정하는 가장 근본적 요인임이 드러난다.
이처럼 중요하지만 자식 사랑이 생겨난 까닭과 과정을 밝히기는 쉽지 않다. 이 어려운 물음에 대한 답은 다윈이 진화론을 세운 뒤에 비로소 나오기 시작했다. 진화론의 정설에 따르면 자식 사랑은 부모가 자신의 유전자를 되도록 많이 퍼뜨리려는 목적에 봉사하는 본능이다. 한 사람의 유전자를 가장 많이 지닌 개체들은 바로 자식들이다. 자식들이 지닌 유전자를 절반은 자기 것이다. 그래서 자식들을 다른 개체들보다 아끼는 것이다.
생태계에서 기본적 존재는 유전자들이다. 유기체들은 유전자들을 보존하고 전파할 목적으로 유전자들이 만들어낸 도구들이다. 태초에는 부모가 아니라 유전자들이 있었다. 부모는 진화 과정을 통해 생겨난 존재다. 이미 고전이 된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에서 영국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사람과 같은 유기체들을 유전자들의 생존과 전파를 돕는 “생존 기계(survival machine)”라고 불렀다. 이처럼 생물적 현상들을 모두 유전자들의 행위로 설명하는 이론은 “유전자적 관점(gene’s eye view)’이라 불린다.
낯설고 어렵지만 유전자적 관점은 모든 생물적, 사회적 현상들을 깔끔하게 설명한다. 예컨대 형제들 사이의 관계도 잘 설명한다. 형제도 자식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유전자들의 절반을 지녔다. 당연히 우애는 깊고 보편적이다. 그러나 우애는 세월이 지나면 많이 식는다. 어릴 적엔 동생을 보살피는 것이 자신의 유전자들을 퍼뜨리는 유일한 길이지만 어른이 되면 자식들을 낳는 것이 조카들을 낳는 것보다 유전자들을 퍼뜨리는 데 곱절 유리하다. 어릴 적에 우애가 깊었던 형제들이 자라서 재산 다툼을 벌이는 일이 흔한 것은 바로 그런 사정 때문이다.
진화론은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들의 행태들을 논리적으로 잘 설명한다. 특히 인류 사회가 짜여지고 움직이는 모습을 깔끔하게 설명한다. 자연히 진화론은 생물과학의 경계를 넘어서 사회과학에도 점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진화를 도입하지 않은 사회과학 이론들은 크게 부족함이 드러났고 개인들과 사회들이 진화한다는 사실을 고려한 이론들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일반 시민들도 진화론에 대한 기본적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과학이나 사회철학에서 논의되는 일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어버이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안식구가 들뜬 목소리로 딸아이가 전날 밤 늦게 식탁에 놓아둔 카네이션 두 송이와 선물을 가리켰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먼저 안식구의 즐거움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을 떠올렸고, 이어 그런 설명이 부모의 자식 사랑이라는 경이로운 현상을 덜 경이롭게 만드는가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적어도 내겐 진화론적 설명이 경이감을 오히려 훨씬 크게 한 것 같았다. 안식구의 들뜬 목소리와 밝은 얼굴에서 35억 년 동안 이어진 진화의 손길을 읽었을 때, 평범한 일상적 사건이 문득 깊은 뜻을 지닌 현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