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인 이광훈 | ||
‘여성들이 술병의 마개를 닫고 있다’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2차, 3차를 가고 술에 취하면 노래방을 찾는 술 문화가 쉽게 고쳐지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기사다. 술자리가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차수가 늘어나는 것은 술값을 각 자가 분담해 내는 관행이 정착되지 못한 데에 있다. 게다가 술자리의 마지막이 노래방으로 이어지는 것은 합법적인 공간에서의 고성방가를 통해 스트레스를 푼다는 것 외에도 노래방이 갖고 있는 ‘마약성’을 끊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래방에 가면 누구나 자신이 노래를 잘 부르는 것으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상업적인 외교사령(外交辭令)인지는 몰라도 음정 박자 다 틀리고 소리만 고래고래 질렀는 데도 ‘가수 소질이 있습니다’ 식으로 추켜올리는 데가 노래방이다. 누구나 한번쯤 우쭐해지게 돼 있다.
10여 년 전 일본 도쿄대학의 어느 정치학자가 “일본은 가라오케 민주국가”라고 한 적이 있다. 가라오케에서 노래를 부르면 웬만한 사람은 다 가수처럼 부를 수 있듯이 일본에서는 이렇다 할 경륜도 없는 정치인도 일단 총리자리에 오르면 관료층의 뒷받침으로 그럭저럭 국정을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얘기였다. 일종의 ‘노래방 효과’인 셈이다.
요즘 한국의 대선정국이 그 ‘노래방 효과’에 휩싸여 있다. 노래방에서 노래부르다 ‘이 정도면 음반 하나 내도 안 될까’하는 욕심이 생기듯이 총리 지내고 장관 지내면 ‘나라고 대통령 못하란 법있어?’ 그런 배짱이 생기나 보다. 이미 출마를 선언했거나 조만간 선언할 예정인 분, 선언을 준비하고 있는 분들까지 합치면 이른바 범 여권에서만 대선 예비주자가 열 손가락으로도 다 헤아리기가 어려울 지경이라고 한다.
‘범 여권’이라는 동네가 친노니 비노니 해서 워낙 복잡한 데다 같은 탈당파도 제1기 다르고 제2기가 달라서 가닥잡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열 몇 명이 다 나와서 무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어리둥절할 뿐이다. 아예 집단 지도체제로 개헌을 해서 대통령 자리를 한 10석 정도로 한다면 모를까. 범 여권에서 거론되는 인사들의 지지율을 다 합쳐도 겨우 10%를 넘을까 말까한 판에 무려 10여 명의 정치인들이 “저요, 저요”하고 손들고 나서니 도대체 어느 쪽이 암까마귀이고 어느 쪽이 숫까마귀인지 알 길이 없다.
명분이야 다 그럴 듯하지만 따지고 보면 명함부터 내밀어 놓고 청와대나 동교동 쪽의 낙점을 기다리겠다는 속셈 아닌가. 그렇지 않고서야 한솥밥을 먹은 한명숙, 이해찬 두 전직 총리가 나란히 출마선언을 하겠는가. 범 여권은 이번 대통령 선거를 코미디로 만들 작정이 아니라면 너도 나도 출마하겠다는 그 ‘노래방 신드롬’에서부터 깨어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