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복거일 | ||
문화는 수많은 아이디어들로 이루어진다. 그런 아이디어들은 서로 경쟁하며 성공적으로 적응한 것들이 선택되어 널리 퍼진다. 자연히 문화가 풍요롭고 번창하려면 세 가지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아이디어들이 풍부하게 나와야 한다. 존재하는 아이디어들에 대한 대안들이 끊임없이 나오도록 하는 것은 문화 발전의 기본적 조건이다.
둘째 아이디어들의 선택 과정이 활발하게 작동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시민들이 자유롭게 실험할 수 있어야 한다. 언론의 자유와 예술적 표현의 자유는 그래서 문화에 필수적이다. 보다 넓게 살피면 갖가지 실험들이 끊임없이 나오는 시장의 존재가 문화의 토양임이 드러난다. 인종, 국가, 종교, 계급에 바탕을 둔 실험에 대한 제약들은 선택 과정이 제대로 작용하지 못하게 해서 문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우리 사회에서 선택 과정을 방해하는 요소들 가운데 으뜸은 편협한 민족주의다. 우리 사회 안에서 자생한 것들을 터무니 없이 높이고 밖에서 들어온 것들을 낮추는 태도는 문화의 발전에 크게 해롭다.
셋째 선택된 아이디어들이 효율적으로 퍼져야 한다. 아이디어들이 빠르게 널리 퍼지려면 그것들의 전달에 드는 ‘정보 비용’이 작아야 한다. 발전된 교통과 통신, 낮은 거래 비용, 그리고 낮은 법적 및 도덕적 장벽은 선택된 아이디어들의 효율적 전파를 돕는다.
이 세 조건들이 제대로 채워져야 비로소 문화는 번창한다. 이런 사정은 역사적으로 여러 번 증명되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근세 유럽의 경험이다. 문예부흥과 과학 혁명이 뜻하는 것처럼 중세가 끝날 무렵 유럽에선 모든 분야들에서 국가와 교회의 통제가 느슨해졌다. 그래서 시민들이 이전보다 훨씬 자유롭게 갖가지 실험들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거기서 나온 우세한 문화를 바탕으로 유럽은 온 세계를 정복했다.
위의 세 가지 조건들을 채우는 데 꼭 필요한 것은 도시화다. 문화는 사람들 사이의 지리적 거리를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했고 기술의 발전과 인구의 증가로 사람들 사이의 거리가 줄어들면서 문화는 꾸준히 발전했다.
그래서 문화의 발전은 늘 도시의 출현을 부르고, 도시의 발전은 문화의 발전을 돕는다. 사람들은 처음부터 ‘도시인(Homo urbanus)’들이었다. 도시 사람들은 시골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정보들을 교환하면서 산다. 덕분에 그들은 기술을 발명하고 익혀서 새로운 일자리들을 창조했고 새로운 사회 조직들을 실험했다.
고대 문명들은 실질적으로 ‘도시 혁명(urban revolution)’과 함께 나왔다. 현대 문명에선 도시화가 가속되었다. 1900년에는 세계 인구의 13%가 도시에서 살았다. 지금은 50%가 도시에서 산다. 한 세기 만에 도시 인구가 거의 네 곱절 늘어난 것이다.
현 정권은 줄곧 ‘지역적 균형 개발’을 시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했다. 시민들이 수도권에 들어오는 것을 억지로 막고 이미 들어온 사람들의 삶을 무거운 세금과 갖가지 규제들로 어렵게 만들었다. 심지어 이미 자리잡은 사회 조직을 강제로 허물고 지방으로 옮기고 있다. 그런 무지막지한 정책의 해악은 경제에서 두드러지지만 문화에서도 보기보다 크다. 문화의 중심인 수도권이 자연스럽게 발전하도록 하는 것은 문화를 북돋우는 길들 가운데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