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준선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 후 법조계 시선은 한상대 전 총장의 중도 사퇴로 공석이었던 검찰총장에 누가 발탁되느냐에 쏠렸다. 박 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이었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 측에 특정인을 강하게 밀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바로 대전고검장으로 재직하던 김학의 전 차관이었다. 김 전 차관은 검찰총장 하마평에 전혀 오르내리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박근혜 인수위원회에 몸담았던 한 친박계 인사는 당시를 이렇게 떠올렸다.
“우리 쪽에서 임명권자인 MB 측에 (김 전 차관을) 추천했다. 총장 후보군에 오르내렸던 여러 인사들이 당선인이었던 박 전 대통령에게 줄을 대기 위해 경쟁이 치열했던 때였는데, 박 전 대통령이 직접 김 전 차관 이름을 언급하면서 정리가 됐다. 박 전 대통령 원로 멘토 중 한 명이 김 전 차관 후원자라고 들었다. 그가 법무부와 검찰 쪽도 접촉하면서 김 전 차관 지지를 부탁했다.”
박 전 대통령 지원사격에도 불구하고 김 전 차관은 검찰총장에 임명되지 못했다. MB 정권 시절이던 2012년 처음 도입된 검찰총장추천위원회는 2013년 2월 7일 김진태 소병철 채동욱, 세 명을 최종 후보군으로 선정했다. 김 전 차관 탈락을 두고 당시 인수위에선 “MB에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반응이 나왔었다는 후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취임 후 채동욱 전 총장을 골랐다. 채 전 총장은 알려져 있다시피 국정원 댓글 수사를 놓고 정권 실세들과 마찰을 빚다가 결국 ‘혼외자 의혹’으로 낙마했다.
검찰에선 동기 또는 후배가 총장에 오르면 옷을 벗는 게 관례다. 김 전 차관은 채 전 총장과 사법연수원 14기 동기다. 그러나 김 전 차관은 사표를 내지 않았고, 고검장에서 법무부 차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검찰 내에선 ‘실세 차관’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돌았다. 김 전 차관이 다음 인사에선 법무부 장관 또는 민정수석에 오를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한 부장검사는 “고검장까지 오르긴 했지만 김 전 차관은 그렇게 주목을 받던 검사가 아니었다. 그런데 총장 후보를 시작으로 실세 차관이라는 말까지 나오면서 그의 정치적 배경이 화제를 모았다”라고 귀띔했다.
김 전 차관은 임명된 지 불과 일주일여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건설업자 윤 아무개 씨로부터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 때문이었다. 김 전 차관은 “사실이 아니다. 윤 씨는 알지도 못 한다”라고 펄쩍 뛰었지만, 자신으로 추정되는 성관계 동영상까지 공개되자 사표를 냈다. 동영상에 대해 경찰은 “김 전 차관 얼굴이 확실하다”며 기소했지만 검찰은 “식별이 불가능하다”는 무혐의 결론을 낸 바 있다.
친박 진영은 김 전 차관 성접대 의혹에 대해 언론에 보도되기 이전부터 인지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인수위 시절 관련 내용을 접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전 차관을 검찰총장으로 밀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앞서의 인수위 근무 친박 인사는 “법조계와 정치권에선 쉬쉬하던 소문이었다. 검찰총장 후보군이니 확인을 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많았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VIP 추천 인사를 누가 건드릴 수 있었겠느냐. 고위 공직자로서 그런 말이 나온 것 자체가 심각한 흠결이지만 김 전 차관은 법무부 차관으로 임명되며 정권 실세임을 입증했다”면서 “그때부터 인사 검증에 구멍이 나 있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자 박근혜 정권의 ‘김학의 구하기’도 본격화됐다. 검찰 최고위직 간부인 탓에 검·경 수사가 부실하게 이뤄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는데, 그 배경엔 정치적 이유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친박 핵심 인사들은 사건을 맡았던 경찰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품고 있었다는 전언이다. 전직 법무부 차관이라는 ‘대어’를 겨눴던 경찰이 정권 뜻과는 배치되는 수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복수의 친박 관계자들은 성접대 사건 발생 후 몇몇 경찰 수뇌부를 통해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었지만 제대로 지켜지진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박 전 대통령 최측근 참모로 통했던 한 인사는 그 책임을 물어 당시 이성한 경찰청장 경질까지 추진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이 참모와 함께 일했던 사정당국 관계자는 “청와대와 경찰 간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았었던 것은 맞다. 제대로 컨트롤되지 않아 몇몇 청와대 참모들이 상당히 불쾌해했던 기억이 있다. 수사를 빨리 끝내고 검찰로 넘기라는 재촉을 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경찰은 김 전 차관에 대해 특수강간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검찰로 송치했다. 그러나 검찰은 무혐의로 사건을 종결했다. 동영상 속 남성이 김 전 차관인지 불분명하고, 피해 여성들의 진술에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당시 검찰은 김 전 차관 집과 은행계좌 등에 대한 압수수색조차 실시하지 않아 봐주기 수사 아니냐는 비판에 휩싸였다. 2014년 한 여성이 자신을 동영상 속 여성이라며 김 전 차관을 고소, 다시 수사가 시작됐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검찰 수사가 이뤄질 때 김 전 차관을 검찰총장으로 추천했던 원로 인사가 전방위적으로 움직였던 정황이 포착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검찰 수사 지휘라인부터 시작해, 박 전 대통령에게까지 김 전 차관 구명 로비를 펼쳤다는 의혹이다. 또한 앞서 경찰 수사를 문제 삼았던 박 전 대통령 최측근 참모 역시 민정수석실 등을 통해 수사 상황을 매일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하며 관심을 나타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 수사를 받게 된 김 전 차관을 위해 정권 실세들이 투트랙으로 힘을 썼던 셈이다. 현 정권 사정당국 고위 인사의 말이다.
“김학의 전 차관 수사 때 박근혜 정권 실세들이 검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진술이 확보됐다. 이들이 채동욱 총장 낙마에도 개입을 했다. 또 수사 초반 말을 잘 듣지 않았던 일부 경찰에 대해 인사상 불이익을 줬던 정황도 포착됐다. 이번 재조사를 결정하게 된 계기 중 하나다. 김 전 차관 사법 처리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재조사를 통해) 부실 수사였음을 입증하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수사 기관을 어떤 식으로 다뤘는지 그 민낯이 드러날 것으로 기대한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