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가 대기업들의 해외 계열사 내부거래도 공시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해외 계열사를 동원한 일감 몰아주기, 부당 지원 등 편법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연합뉴스.
공정위는 최근 대기업 공시담당자를 대상으로 한 정책설명회에서 해외 계열사의 상품·용역거래 등도 국내 계열사와 마찬가지로 공시할 것을 요구했다. 현행법상 총자산 5조 원 이상인 대기업집단 소속 회사는 특수관계인과 자본금의 5% 또는 50억 원 이상의 내부거래를 할 경우 의사회 의결을 거쳐 사전에 이를 공시해야 한다. 공정위는 여기서 ‘특수관계인’에 해외 계열사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하겠다는 것이다.
공정위의 이러한 방침은 해외 계열사와 거래를 통한 대기업들의 사익 편취, 부당 지원 등의 편법 실태를 확인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금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국내 계열사에만 적용되다 보니 대기업들이 이를 피해 해외 계열사를 동원, 자산 등을 부당하게 늘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해외 계열사와 거래내역을 모르니 편법 가능성이 전혀 체크되지 않는다”며 “이제부터라도 해외 계열사에 대해 신경 쓸 것”이라며 그 취지를 설명했다.
기업들은 과도한 공시부담으로 이어진다며 볼멘소리를 낸다. 재계 한 관계자는 “불필요한 규제, 감시의 확대는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 활동까지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며 “과거 모뉴엘 사태처럼 해외 매출액을 부풀려 금융사에 수천억 원의 손실을 입힌 명백한 불공정행위 등에 대해서만 규제를 가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공시 대상 확대는 예전부터 논의돼 왔던 사안이다. 2016년 롯데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던 당시, 롯데 해외 계열사의 복잡한 지분 현황이 드러나면서 해외 계열사 부당 지원 문제가 불거졌다. 당시 롯데는 16개의 해외 계열사가 롯데물산, 호텔롯데, 롯데케미칼, 롯데푸드 등 11개의 국내 계열사에 출자해 한국 롯데를 지배하는 다단계 지배구조를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시장에선 해외 계열사의 거래내역은 물론 소유 현황까지 공시해야 한다는 요구가 연이어 나왔다.
대기업집단의 해외 계열사 간 매출 비중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삼성의 해외 계열사 간 매출은 172조 원으로 국내 계열사 간 매출 24조 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박정훈 기자.
개별 기업들의 국내외 계열사간 매출 차이도 크게 나타났다. 지난해 삼성은 총매출액 315조 원을 기록, 이중 국내 계열사간 매출은 24조 원으로 그 비율이 7.6%에 그쳤지만 해외 계열사간 매출은 172조 원으로 54.5%의 높은 비율을 보였다. 이밖에 한국타이어의 국내 계열사간 거래와 해외 계열사간 거래 비중의 차이 폭은 44.5%로 나타났으며 LG와 현대차는 그 차이가 각각 21.8%, 8.8%로 해외 계열사 간 매출 비율이 더 높았다.
국내외 계열사 내부거래 변화 추이를 보면, 대기업들이 내부거래 일감 등을 대거 해외로 빼돌리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2011~2015년 총수가 있는 자산 상위 10대 기업들의 국내 계열사 내부거래는 줄었지만 해외 계열사 내부거래는 계속 늘어났다. 2011년 239조 원을 기록했던 해외 계열사 내부거래액은 2015년 287조 원으로 20.0% 증가한 반면 국내 계열사 거래액은 2015년 16조 원을 기록하며 같은 기간 11.6% 감소했다. 김남근 법무법인 위민 변호사는 “국내 계열사에 대한 정부의 행정적 감시·규제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해외 계열사에 대한 기업들의 일감 몰아주기 가능성 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공정위가 해외 계열사에 대한 편법 정황을 포착한다 해도 이에 대한 제재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강신업 법무법인 하나 변호사는 “현지법에 따라 설립된 해외 법인을 국내법에 따라 처벌하기란 쉽지 않을뿐더러 해외 합작법인에 대한 제재는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남근 변호사는 “지난 효성의 갤럭시아일렉트로닉스 부당지원처럼 중간에 금융투자상품을 만들어 간접적으로 자금 등을 지원하는 행위가 해외에서 일어날 경우 이를 제재할 방법이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결국 공정위의 유권해석이 아닌 시행령 변경으로 해외 계열사의 공시를 의무화하고, 기업 처벌을 위한 관련 법안 발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2016년 국회에서 발의된 대기업집단의 해외 계열사 출자·거래내역 등의 공시를 의무화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3건 모두 아직 계류 중이다.
공정위는 이를 계속 검토·보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정위 관계자는 “해외 계열사 처벌은 어려울지라도 최소한 거래 상대인 국내 계열사는 원칙대로 처벌할 수 있을 것”이라며 “사실상 지금은 기업들에 해외 계열사 공시를 인지시키는 일종의 계도 기간으로, 앞으로 여러 의견을 수렴해 공시제도와 제재방안 등을 정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진 기자 reveal@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