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인 이광훈 | ||
150여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서양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은둔의 나라’였다. 19세기 말 외세에 의해 반 강제적으로 대문을 열 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빗장을 걸어 잠그고 우리끼리 살아왔다. 유난스럽게 단일민족 국가와 한 핏줄을 내세우며 ‘대한사람 대한으로’식 순혈주의 전통을 믿으며 살아온 것이다. 각급 학교 교실마다 일민주의(一民主義) 깃발을 내 걸고 단군의 홍익인간 이념을 교육지표로 삼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우리가 믿었던 일민주의, 순혈주의는 하나의 허구였다. 우리는 예부터 여진, 거란, 말갈 등 북방민족과 교류하며 살아왔고 멀리 인도 아유타국에서 왕비를 모셔오고 고려 때는 상당기간 원나라 공주를 왕비로 맞아들였던 시대도 있었다. 그런가하면 덕수 장씨나 화산 이씨처럼 멀리 아랍이나 베트남에서 귀화한 성씨도 많다. 심지어는 우리 민족의 구성이 북방계 60%에 남방계 40%라는 주장도 있다. 사정이 그런데도 우리는 순혈주의를 국시처럼 떠받들며 피부색이 다르고 인종이 다르고 국적이 다른 사람을 무조건 차별하고 배척하는 심성을 가꾸어 왔다.
유엔이 드디어 한국에서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것은 국제적인 기준으로 볼 때 인종차별적 행위에 해당될 수 있다는 옐로카드를 꺼냈다. 한국 내의 이주 노동자, 외국인 여성배우자, 국제결혼으로 태어난 혼혈아의 인권문제 등을 거론하며 순수혈통이니 혼혈 같은 용어와 더불어 인종 우월적인 관념이 한국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는 데 주목한다는 점도 덧붙였다.
우리사회는 이미 다인종사회로 들어섰다. 외국인 주민등록 인구만 해도 63만 명을 넘어섰고 외국인과의 국제결혼도 연간 3만 9700여 건(2006년)으로 전체 결혼의 12%에 이른다. 100명 중 12명이 국제결혼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전남 곡성군의 어느 초등학교 재학생 중에는 외국인 이주 여성의 자녀가 20명이나 된다고 한다.
우리도 이제는 입으로는 세계화를 떠들면서 우리의 의식은 아직도 19세기적 척화비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크레파스의 살색을 살구색으로 바꾸어 부른 것이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지난 8월 19일 충남 천안역 광장에서는 스물일곱 살이나 나이가 많은 남편을 따라 한국으로 시집왔다가 남편에게 얻어맞아 갈빗대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숨진 열아홉 살 베트남 신부를 위한 위령제가 열렸다.
이는 핏줄이 다르고 못사는 나라에 대한 우리사회의 차별이 얼마나 극심한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이제는 우리도 피부색이 다르고, 종족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차별하던 지난 날을 반성해야 한다. 굳이 유엔의 권고가 아니더라도 이제는 핏줄을 따지고 출생지를 가리는 전근대적 폐습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