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국회에서 ‘드루킹’ 특검이 통과되는 모습. 이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정국이 흘러가고 있다. 박은숙 기자
지난 6일 CBS 라디오에 출연한 박철완 전 새누리당 선대위 디지털종합상황실장은 캠프에서 이른바 ‘레드팀’을 이끌며 온·오프 위기 대응을 총괄했다며 “아군 쪽의 문제점도 체크해서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지시해서 없애는 역할도 같이 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박 전 상황실장은 “당시 새누리당 당직자들조차 온라인에서 여론 조작에 상응하는 불법적인 행위를 하지 말라고 제가 반복적으로 경고했다”며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걸 왜 못 하냐’, ‘왜 불법이냐’고 오히려 반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밝혔다. 이어 박 전 상황실장은 “2012년 당시에 불법적인 온라인 선거운동을 했던 사람들 중에서 상당수가 청와대(BH) 홍보수석실로 흘러들어갔다. 그 숫자가 4~5명이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폭탄 발언이 나오자 드루킹 특검까지 국회에서 통과시킨 한국당이 오히려 당황한 모양새다. 홍문표 한국당 사무총장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그때 (매크로 돌린) 정황이 있으면 차라리 그것을 명명백백하게 나타내는 것이 낫지, 한쪽에다가 남겨놓고 지금에 와서 당직 맡은 사람들보고 그때 십몇 년 전 어떠냐고 물어보면 그게 맞겠냐”며 “당내에서는 이게 사실이냐 또 그때 그런 일이 진짜 있었느냐, 이렇게 서로 궁금증을 논의하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논란 이후 더불어민주당은 공세로 전환한 모습이다. 라디오 인터뷰 바로 다음날인 7일 민주당 백혜련 대변인은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을 방문해 고발장을 제출하면서 “이번 사건은 정당의 공식 선거운동 조직이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여론조작을 했다는 것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자 헌법 훼손 행위”라며 “국민을 대표해 고발장을 제출한다”고 말했다.
7일 CBS 라디오 인터뷰에 출연한 우상호 의원도 “2012년 대선은 사람 대 기계의 싸움을 한 것 아니냐”며 “특검을 2개 할 수 없으니 지금 하고 있는 특검에 이 문제를 포함해 진행해야 한다. 특검법을 개정해 이 사안을 특검 대상에 추가하면 된다”는 의견을 냈다. 민주당의 역공이 시작된 셈이다.
민주당의 역공이 이어진다면 타깃은 이정현 의원으로 꼽힌다. 18대 대선 당시 새누리당 공보단장을 맡았던 이정현 의원이 당시 상황을 모를 리 없으리란 추정에서다. 박 전 상황실장도 인터뷰 말미에 “이정현 의원이 많은 걸 알고 있을 겁니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 바 있다. 우상호 의원도 인터뷰에서 “당시 이정현 공보단장이 캠프에서 거의 실세 아니었느냐. 청와대 홍보수석 할 적에도 왕수석으로 불릴 정도였으니까 이 분이 몰랐다는 것은 기술적으로 몰랐다는 얘기고, 상당히 광범위하게 선대위와 관련된 사실은 알았을 것 같다”고 의견을 냈다. 이정현 의원은 각 언론사 인터뷰에 “매크로나 가짜뉴스 부분은 전혀 모르고, 들은 적이 없다”는 입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문제가 터지기 3년 전 2015년 일요신문에서도 이 같은 불법 SNS 선거 운동의 문제점을 보도한 바 있다. 그 중 ‘[단독] ‘18대 대선 불법 SNS캠프’ 가담 포럼…박근혜-이정현 친구 공동 운영’이란 보도에서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이 기사에 따르면 현재 이야기되는 불법 매크로 프로그램의 진원지로 포럼동서남북을 꼽고 있다.
이 기사에 익명으로 이름을 올린 한 여권 고위 인사가 최근 화제가 된 박철완 전 새누리당 선대위 디지털종합상황실장이었다. 3년 전 박 전 상황실장이 이미 매크로를 이용한 불법 선거운동의 진원지를 경고했던 셈이다. 당시 그는 “포럼동서남북과 서강바른포럼이 단순 보수단체일 뿐이라면 포럼 출신이 대선 끝난 뒤 주요 요직에 잇따라 발탁된 것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공기업부터 새누리당은 물론 청와대 홍보수석실에 대기업 연구소까지 갈 수 있는 곳은 다 갔다”라며 “이들의 활동이 십알단(십자군 알바단) 활동과 충분히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본다”라고 전했다.
지난 대선마다 불었던 매크로 건을 전부 들춘다면 두 개 포럼이 결국 최종 타깃이 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박 전 상황실장의 말과 당시 기사를 종합해보면 매크로 소동의 진원지가 포럼동서남북일 가능성이 높은 셈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포럼동서남북과 쌍둥이 같은 단체인 서강바른포럼도 불법 SNS 선거 운동을 하다 처벌 받은 바 있다.
특히 서강바른포럼은 몇몇 인사가 처벌됐지만 축소수사됐고, 포럼동서남북은 제대로 수사에 착수조차 않았다는 당시 정치권 관계자들의 의견도 주목할 만하다. 2013년 서강바른포럼 수사 당시에는 전 사무국장 등 핵심 인물을 기소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온 말이었다. 또한 재판을 받을 당시 알려졌던 불법선거사무실이 1~2채가 아닌 10여 채에 달한 것으로 나중에야 드러났던 점도 문제였다. 또 다른 포럼인 포럼동서남북은 불법 SNS 선거운동을 했다는 의혹만 제기됐을 뿐 제대로 수사에 착수한 적도 없다. 우 의원 말대로 특검에 2012년 대선 내용까지 포함된다면 이때 두 포럼이 타깃이 되고 여기서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국당 내부에서도 이 같은 일이 자정작용이 돼야 한다고 말하는 인사들도 있다. 자유한국당 관계자는 “매크로 등 SNS 선거 업자들은 각종 선거철마다 꼭 돌아온다. 큰 의미 없다고 말해도 쓰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 기회에 모든 불법 SNS 업자들을 도려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