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복거일 | ||
이런 노력은 세 가지 가정에 바탕을 두었다. 첫째, 토종 생태계는 대체로 안정적이다. 둘째, 토종 생태계는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유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그런 질서를 위협하는 것으로 보이는 외래 어종들을 없애야 한다. 널리 받아들여지는 듯하지만 이 세 가정들은 그르거나 근거가 약하다.
먼저, 생태계는 늘 진화한다. 자연 선택을 통해서 환경에 잘 적응된 종들은 그렇지 못한 종들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널리 퍼진다.
지금 한반도의 생태계를 이룬 종들도 실은 거의 다 외부에서 들어온 것들이다. 토종이라고 해도 지역적 격리에 의해 약간의 변형이 나왔을 따름이다. 그래서 토종과 외래종 사이의 차이는 들어온 시기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토종을 우대할 이유는 없다. 우리에게 정답다는 사정을 빼놓고는.
설령 우리가 바라더라도 생태계를 그대로 유지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세계화는 생태계의 진화를 점점 촉진한다. 인류의 확산은, 특히 농업 혁명은 생태계의 진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다른 종들의 터전이 급격하게 줄었을 뿐 아니라 작물들과 가축들처럼 사람이 적극적으로 이용한 종들과 쥐, 참새, 바퀴벌레처럼 사람에 잘 적응한 종들이 상대적으로 번창했다.
사람과 다른 종들 사이의 영역 다툼이 아직도 이어진다는 사실도 있다. 집에선 개미나 바퀴벌레와 같은 해충들과의 전쟁이 심각하고 들판에선 잡초들과 멧돼지와의 전쟁이 이어진다. 사람의 필요와 다른 종들의 필요 사이의 미묘한 균형은 잡기가 힘들다.
따라서 생태계에 대한 우리의 간섭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우리는 간섭에 필요한 지식도 능력도 부족하다. 정당화될 수 있는 간섭은 사람이나 사람에게 필요한 종들을 위협하는 기생충들을 없애는 것이다. 황소개구리, 배스, 블루길과 같은 외래 포식자 종들은 이런 범주에 넣을 필요가 없다. 그것들의 영향은 초기에는 크지만 차츰 먹이사슬 속으로 받아들여져서 새로 안정을 찾은 생태계의 한 부분이 된다. 이 문제에 대해선 우리는 철학적 태도를 지닐 필요가 있다.
근년에 북한에서 발생하여 휴전선 지역에서 창궐한 말라리아가 꾸준히 남쪽으로 퍼졌다. 이제는 서울 근교인 일산과 인천에까지 뿌리를 내렸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은 너무 부족하다. 상황이 그러한데 외래 어종을 잡는 데 자원을 들이는 일은 한가롭다.
생태계에 대해 그른 인식과 어리석은 정책이 나오는 바탕은 이른바 ‘생태 민족주의’다. 생태계를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고서 종들을 자의적으로 ‘우리 것’과 ‘남의 것’으로 나누어 차별하는 태도다. 우리 사회에서 민족주의가 거세긴 하지만 생태계에까지 민족주의를 적용하는 것은 지나치고 당연히 폐해도 크다.
사람도 생태계의 한 부분이다. 사람이 생태계에서 워낙 큰 자리를 차지하다 보니 사람의 존재 자체가 생태계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생태계에 대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생태계에 민족주의를 투사하는 일은 분명히 책임감 있는 태도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