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향 수원대 교수 | ||
“그게 시간인가봐. 많이 변했어. 사람들은 친절해졌는데 깊은 맛은 없고, 모두들 연예인 같아. 왜 그렇게 예쁘게 차려입고 다니는지.”
“섹스 앤 더 시티 같은 미국 드라마 보면 미국사람들도 마찬가지던데.”
“그렇게 사는 미국 사람들은 뉴욕에나 좀 있을까, 1%도 안 돼. 어떻게 매일 화장을 하고 다니니? 여기선 대학생들까지 뽀시시 화장하고 다니더라. 그럴 필요 뭐 있어. 아이들은 잘 배우면 되는 거고, 선생은 잘 가르치면 되는 거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랬다고 여기 오니까 강의하러 갈 때도 옷차림에서부터 신경 쓰이더라. 미국에선 안 그랬거든.”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영어열풍이라고 했다. 한국말이 있고,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라는 한글이 있는 대한민국에서 마치 미국의 식민지가 아닌 게 너무 억울한 사람들처럼 영어에 올인한다고.
“여기선 왜 그렇게 영어, 영어 하니? 중요한 건, 사고(thinking)지! 구청에서도 영어로 회의한다고 해서 놀랐는데, 이젠 학교 수업도 영어로 한다고 하더라. 그게 몰입이 되니? 더구나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할 나이에, 남의 언어로 어떻게 생각하는 법을 배우니? 진짜 교육은 포기하겠다는 거지.”
그러고 보니까 얼마 전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조선시대 사랑방 풍경을 묘사한 한 신문의 글이 기억이 났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용하지 않은 언어를 공부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언어는 단순히 내 사고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다. 언어는 하나의 세계다. 생각하기 전에 말할 수 있고, 술술술 나온 말의 논리를 되새기며 다시 반성할 수 있는 건 생활이 된 언어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영어, 아무리 잘해도 생각이 창의적이지 않으면 그거 뭐 할 거니? 더구나 그렇게 주체성이 없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주체적으로 할 거라고. 미국 베끼다가 평생 카피인생으로 사는 거지.”
미국에서 영어로 소크라테스를 강의하는 선배의 말이니 더 힘이 실린다. 물론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아니, 영어뿐 아니라 중국어를 잘하는 사람, 러시아어를 잘하는 사람, 일어를 잘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다른 언어를 이해한다는 것은 사고의 외연을 확장해가는 일이니까.
그러나 전 국민을 영어 강박증으로 몰아가는 건 시대정신이라기보다 우리의 삶이 왜곡되어 가고 있는 증거 같아서 한숨이 다 나온다. 영어를 잘하지 못해도 국익을 잘 지킨 역대 독일이나 프랑스 외교부 장관도 많은데. 나는 영어를 안다고 공식석상에서 우리말을 스스로 포기하고 영어를 하는 리더보다 좋은 통역을 쓰면서 꼼꼼하게 우리의 국익을 챙길 줄 아는 당당한 리더가 훨씬 더 듬직하다. 중요한 건 사고다. 사고하는 주체성 없이 말만 배워서 그 말에 무슨 혼이 실리고 힘이 실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