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거일 소설가 | ||
어쨌든 이번 일을 겪으면서 영어 교육에 관한 논의가 활발했다. 그런 논의에서 한 가지 주장은 으레 나오고 폐해가 아주 크므로, 찬찬히 살펴볼 만하다. 바로 “영어는 모두 배울 필요가 없고, 필요한 사람들만 배우면 된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순수하게 그르다. 영어가 표준 언어가 된 세상에선 모두 영어를 잘 써야 한다. ‘필요한 사람들’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영어를 제대로 쓰지 못하면 누구라도 자신의 잠재적 능력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그의 삶은 그만큼 초라해진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엄청난 정보와 지식 가운에 중요한 것들은 모두 영어로 저장되었다. 따라서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은 필요한 정보와 지식에 접근하기 어렵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희곡도, 밀튼과 휘트먼의 시도, 디킨스와 포크너의 소설도 제대로 즐길 수 없고, 기껏해야 맛없는 번역에 의존해야 한다. 할리우드 영화나 미국의 방송극을 볼 때 그는 심취하지 못하고 자막을 따라가기 바쁘다. 해외 관광에 나서면 거기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지 못하고 안내원들이 정해놓은 곳들만 들른다.
말이 통하지 못하니 그는 외국인 친구나 연인을 사귀지 못한다. 실은 외국인들로부터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세계의 표준 언어를 쓰는 능력은 세계 시민의 요건들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는 외국인들과 만나는 자리를 피하게 된다.
그는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는 ‘타임’이나 ‘이코노미스트’와 같은 시사 주간지에서 직접 정보를 접하지 못하고국내 주간지에서 정보를 얻어야만 한다.
세계는 경제적으로는 이미 하나가 되었다. 세계적 경제 정보는 모두 영어로 저장되고 실시간으로 쓰인다. 그런 정보를 얻지 못하므로 그는 증권 시장이나 외환 시장에서 늘 남에게 뒤진다. 좋은 사업 기회도 남에게 빼앗긴다.
무엇보다도, 영어로 된 책들과 논문들을 읽지 못하므로 그는 자기 분야에서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없다. 영어로 자신의 생각과 연구 결과를 발표하지 못하므로 자기 분야에서도 늘 이름 없는 사람으로 남게 된다.
“필요한 사람들만 배우면 된다”고 하는 사람들은 주로 직업과 관련해서 그런 주장을 편다. 실은 직업에서도 사정은 같다. 그들은 일자리가 무작위로 먼저 배정되며 영어가 필요한 자리에 배정된 사람들만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면 된다고 상정한다. 현실에선 일자리가 그렇게 무작위로 배정되지 않는다. 좋은 직업, 좋은 직장, 좋은 업무는 영어를 잘 하는 사람들에게만 배정된다. 영어를 못하면 그런 좋은 곳들에 접근할 수가 없다.
“필요한 사람들만 하면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비록 또렷이 인식하지 못하겠지만 ‘영어를 못해서 나나 내 자식들이 좋은 일자리로부터 원천적으로 배제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품은 것이다. 그래서 그런 주장은 현실적으로 해로울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문제적이다. 그런 주장에 끌리는 사람들은 인도의 천민들이 자기 자식들에게도 초등학교에서부터 영어를 가르쳐달라고 시위한다는 사실을 성찰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