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은 지난해 9월 ‘국민해결사’로 부임한 뒤 4개월째 전국 각지를 돌며 민원 해결을 위해 뛰고 있다. 하지만 그의 마음 한 구석에는 언제나 ‘당으로의 회귀’를 꿈꾸는 연어의 본능이 꿈틀거리고 있다. 오는 7월 28일 재선거에서 ‘반드시’ 배지를 달아야만 당권 또는 차기 대권을 노려볼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필요성 때문일까. 이 위원장은 빠르면 3월경 현직에서 물러날 수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권익위 내부사정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이 위원장이 최근 들어 직원들에게 ‘3월 달까지 열심히 해서 (임기 중) 뭔가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많이 한다. 직원들도 (대표적 업적이 될 만한 것을 찾느라) 요즘 더 바쁘다”라고 말했다. 권익위 내부 일각에서는 이 위원장이 빠르면 2월 말, 늦어도 3월에는 사퇴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렇듯 이 위원장의 조기 사퇴설이 흘러나오는 배경에는 그의 눈이 계속 정치권으로만 향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권익위 주변에서는 아직까지도 이 위원장이 실국장과 과장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한 현장 방문 등을 할 때도 동행 언론인의 소속사를 묻는 등 정치적인 ‘비중’에만 관심을 보인다는 내부 불만도 있다. 이 위원장이 역시 ‘정치인’ 출신이기 때문에 자신의 권익위 활동을 자꾸 정치적으로 연결하려는 경향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 위원장은 지난해 사교육 논란이 심화될 때 담당 직원에게 ‘사교육에 대한 보고서’를 올리라는 지시도 하는 등 가끔 권익위의 활동과는 무관한 정치적 이슈에 더 민감하게 대응하려고 한다는 전언이다. 그리고 최근 장광근 전 사무총장의 사퇴 논란이 있었을 때 장 전 총장이 이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구명을 요청했고 이 위원장이 청와대에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등 ‘정치적 활동’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또한 이 위원장은 최근의 해외 순방 일정 가운데 류우익 주중대사와의 면담도 추진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권익위 활동과 별다른 관계가 없는 류우익 주중대사와의 면담 추진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 위원장이 국내의 시선을 피해 중국에서 류 대사와의 면담을 추진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 행보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 위원장이 류 대사와의 만남에서 세종시 정국과 지방선거 준비, 그리고 자신의 당 복귀 시점 등을 집중적으로 논의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위원장의 3월 사퇴는 7월 재선거를 위해 너무 일찍 공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아니냐는 반응도 나온다. 이 위원장으로서는 6월 지방선거의 결과를 본 뒤 사퇴 여부와 은평을 재선거 출마를 결정해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현 친이그룹의 세종시 정국 위기감이 드러난다. 이 위원장이 정계복귀를 서두르는 것은 세종시 전쟁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점점 밀리고 있는 친이그룹 내부에서 뭔가 특단의 대책을 마련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비록 정몽준 대표가 지도부를 재구성하고 새 출발을 다짐하고 있지만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3~4월 세종시 전쟁에서 패배할 경우 친이그룹을 주축으로 한 주류가 조기전당대회 개최 등과 같은 ‘출구전략’을 또 다시 요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본다. 특히 정치권 일각에서는 세종시 전쟁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패할 경우 그 후폭풍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고 클 것으로 전망한다. 친이계의 한 핵심 의원은 이에 대해 “현재로서는 조기전대 필요성이 크지 않고 실현 가능성도 떨어진다. 하지만 세종시 전쟁이 점점 친이-친박 간 감정대결로 치달으면서 분당 직전의 갈등 사태까지 갈 경우 수습책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 후유증도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런 상태로 지방선거라는 대사를 치를 수 있겠느냐. 무너진 당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이 위원장의 조기 사퇴는 여당 컨트롤 타워의 복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이 위원장은 측근들에게 세종시 전쟁에서 수정안 찬성론자가 점점 위축되는 당내 상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나타낸 것으로 알려진다. 한때 한반도 대운하의 전도사이기도 했던 그가 이명박 대통령의 대표적 정책이 ‘정적’ 박근혜 전 대표의 ‘몽니’ 때문에 좌절되는 상황에 대해서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후문이다. 그를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 위원장은 정몽준 대표가 세종시 전쟁을 진두지휘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라고 보고 자신이 위기 해결사로 나설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조기 사퇴를 감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특히 친박 일각에서 최근 조기전대 주장까지 하며 친이 주류를 압박하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했던 것으로 안다. 그래서 이 위원장이 3월에 사퇴를 하게 된다면 조기전대를 전제로 한 친박과의 전면전 선포를 의미하는 것이다”라고 전제하면서 “분명한 것은 현재의 세종시 정국이 이 위원장을 7월까지 권익위에 묶어둘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는 데 있다. 친이그룹으로서는 세종시 패배를 전제로 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고 그 수습책의 첫 수순이 바로 이 위원장의 조기 사퇴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 위원장 측에서는 ‘3월 사퇴설’에 대해 “사실무근이다. 지방선거 결과를 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부인했다.
최근 정운찬 총리의 세종시 국회 답변은 그 어느 때보다 공격적이고 전투적이었다. 친박그룹도 대정부 질문에서 ‘여소야대’를 노정하며 여권 주류를 더욱 거세게 몰아붙이고 있다. 양측의 감정싸움은 이제 분당을 당연시할 정도에까지 이르렀다. 여기에 최근의 여론은 원안 찬성(37.2%)이 수정안 찬성(34.7%)을 앞지르는 등 이 대통령을 둘러싼 세종시 환경은 더욱 악화됐다(리얼미터 2월 4일 조사). 궁지에 몰린 이 대통령이 그 출구전략으로 ‘정운찬 아웃, 이재오 인’의 카드를 전격적으로 꺼낼 경우 이 위원장의 조기 사퇴는 가능성에서 현실로 굳어질 수 있을 것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