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영준 경희대 교수 | ||
5년 전 노무현 정부는 개혁의 기치를 들고 서민들이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각오로 출범했다. 그러나 결과는 개혁과는 완전 동떨어진 정부였다는 평가와 함께 5년 내내 이념적 갈등과 386세대의 아마추어리즘적 좌우충돌로써 결과적으로 국민들로부터 완전 외면당하는 정부가 되고 말았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노무현 정부는 ‘위장된 개혁정부’였다는 가혹한 평가를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결과적으로 세 가지의 위장이라고 평가되는 바, 첫째는 균형발전이었고, 둘째는 참여를 앞세운 것이었고, 셋째는 사회적 약자와 서민들로 위장되었다는 혹평이 있는 것 같다. 이런 혹평은 정부정책의 목표와는 달리 결과가 정반대로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출범 당시에 참여정부의 정책목표가 처음부터 왜곡된 위장전술을 택한 것은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평가를 받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성찰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은 여러 이유가 내재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역사적으로 모든 실패한 정부들이 공유하고 있는 편견이라는 무서운 인식의 오류가 초래한 결과인 것을 인지해야 한다. 역사 속에서 우리는 반면교사를 놓치면 반복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하면서 상징적으로 ‘실용정부’를 표방했다. 실용은 실질적인 정책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이념적이거나 편견들을 배제하여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추구하는 선진적인 접근방법이다.
그러면 진정으로 이명박 정부는 실용정부인가. 앞으로 다양한 정책집행과정에서도 종합적인 평가가 내려지겠지만 출범과 동시에 나타난 장관들의 인선과정을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소위 시중에서 회자되고 있는 ‘고·소·영’과 ‘강·부·자’가 인사원칙이라는 세간의 비아냥이 상징하듯이 인사검증시스템의 부재와 동시에 실패한 인사의 첫 단추라는 큰 비난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와 한나라당 일각에서 언론에 표명하는 하소연은 지난 10년 동안의 좌파정권에서 일하거나 협력했던 인재들을 배제하고 나니, 인재풀이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설득력 있는 하소연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명박 정부도 ‘위장된 실용정부’임을 스스로 자인하는 고백인 것이다. 진정한 실용정부라고 한다면 좌파정부에서건 우파정부에서건 국가를 위해 청렴하고 소신 있게 일하고 원칙을 바꾸지 않는 경쟁력 있는 전문가를 폭넓게 등용해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는 그 스스로 이념과 편견의 볼모가 되었다는 말이 아닌가.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불과 출범 일주일도 안된 상태에서 인사대란이 난 것은 분명 큰 문제이지만 일주일밖에 안되었기 때문에 첫 단추를 다시 꿰고 진정한 실용정부로 거듭난다면 국민들은 다시 이명박 정부에게 큰 신뢰를 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