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언론인 | ||
2000여년 전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명 문장가였던 키케로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다. 여기서 “누군가와 누군가의 명령”에 나오는 ‘누군가’는 당시 새로운 정계 실력자로 떠오른 줄리어스 시저였다. 문득 이번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다선(多選)의원들이 이 편지를 읽으면 어떤 생각을 할까하는 짓궂은 상상을 해 보았다. 이명박 대통령을 만드는 데 일등공신이었으면서도 공천조차 받지 못한 원로 의원들은 ‘약삭 빠른 토끼들이 다 죽자 토끼몰이에 주구(走狗)로 나섰던 개들이 솥에 들어간다’는 ‘교토사 주구팽(狡兎死 走狗烹)’의 고사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 선거대책위원회의 최고 의사 결정기구였던 이른바 6인원로회의 멤버 중 박희태, 김덕룡 의원은 공천에서 탈락했고 대통령의 형님인 이상득 의원은 공천을 받았다. 이에 대해 형님공천이니 뭐니 뒷말이 나돌고 바닥민심이 돌아서자 55명의 공천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3~4선 의원들이 무더기로 공천에서 탈락되는 판에 고희를 훌쩍 넘긴 나이에다 5선 의원으로 그동안 누릴 것 다 누린 분이 대통령 형님이라고 해서 공천 받은 것은 형평의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것이었다.
이들 소장파 의원들은 자신들을 단종복위에 나섰다가 숙청당한 생육신(生六臣)에 비유하기도 했다. 생육신은 단종복위 ‘의거’에 참여했다가 다행히 목숨을 건진 6명의 집현전 학사들이었다. 이들은 평생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초야에 묻혀 일생을 마쳤다. 2008년의 생육신 55인이 550여년 전의 생육신과 다른 점이 있다면 벼슬을 버리지도 않았고 초야에 묻히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이들은 오늘도 지역구의 표밭을 누비며 금배지의 꿈을 가꾸고 있다.
우리가 궁금해 하는 것은 한때는 이명박 후보를 위해 도원결의(桃園結義)를 맺은 정치적 동지들이 왜 집권하자 말자 형님이니 생육신이니 하며 서로 으르렁거리는 사이가 됐느냐는 것이다. 공천에서 탈락한 친박(親朴)세력 중 일부가 당을 뛰쳐나가자 이번에는 친이(親李)세력끼리 편을 갈라 삿대질하고 있는 꼴이다. 차기 당권을 위한 사전포석이니 뭐니 그럴 듯한 분석이 무성하지만 표 찍을 때나 잠깐 대접받는 연작(燕雀)들로서는 대붕(大鵬)의 깊은 뜻을 알아 모시기가 어렵기만 하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투표지의 인주가 채 마르기도 전에 벌써부터 밥그릇 싸움이나 벌이는 정권에는 아무리 열광적으로 지지했던 국민들이라도 금방 등을 돌리고 만다는 점이다. 하기야 전쟁에서 패배 다음으로 위험한 것이 승리라는 말도 있긴 하다. 전쟁비용을 지출한 데 따른 경제적 파탄에다 승전 후의 논공행상을 둘러싼 권력내부의 싸움이 파국을 불러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겨우 한 달을 넘겼는데 벌써부터 ‘형님’이니 ‘생육신’이니 하며 드잡이하는 모습이 국민들의 눈에는 어떻게 비칠 것인지, 오늘 9일 총선에서 나타날 민의의 심판이 벌써부터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