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영준 경희대 교수 | ||
의회 민주주의는 국민을 대신할 대표자들을 뽑아서 국가의 의사를 결정하는 간접적 대의 민주주의다. 대의 민주주의가 국민의 의사를 전달하는 현실적 대안인 것은 맞지만 국민의 의사가 잘못 전달되거나 국민이 정치적 무관심에 빠질 우려가 높은 단점이 있다.
석학 루소는 명저 <사회계약론(1762년)>에서 영국의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다음과 같이 설파했다. ‘영국민들은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대단히 큰 오해다. 그들이 자유로운 것은 오직 의원을 선출하는 기간에 한정될 뿐이며, 선거가 끝나는 순간부터 그들은 다시 노예가 되어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가 된다. 자유를 누리는 짧은 기간 동안 영국민들이 어떻게 자유를 사용하는지를 살펴보면 그들이 자유를 상실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240여 년이 지난 오늘날의 우리 현실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며칠 후면 제18대 총선투표일이다. 그런데 무슨 근거로 뽑아야 하는지 선거벽보만을 보고는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정당을 믿고 투표를 하면 신뢰가 가는 현실도 아니다. 공천과정에서 정당들이 보여준 추태는 오히려 정치불신만 가중시켰기 때문이다.
더욱이 심각한 문제는 이번 총선에서는 국회가 주도해야할 법개정이나 제정과 관련한 정책대결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유일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한반도 대운하 관련한 정책토론이나 서명운동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중앙선관위가 아예 금지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내 사전에 차단하고 말았다.
18대 국회가 시작되면 바로 특별법제정을 놓고 격돌이 벌어질 텐데 어떤 후보가 대운하를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조차도 잘 알 수 없도록 정책대결을 막고 있는 한심한 형국이다. 또한 재벌들에게 은행을 넘겨주어도 좋은지를 판별하는 금산분리정책의 폐지가 맞는지 틀린지, 선진국에서는 어떤 원칙을 갖고 있는지, 재벌들의 문어발식 투자를 다시 허용하자는 출자총액제한제도의 폐지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재벌들이 덩치를 키우면 정말로 고용이 많이 창출되는지 아니면 고용은 거의 안 늘고 오너들의 지배권만 강화시켜 고객들의 돈으로 그들만의 잔치를 차려주자는 것인지 등에 대한 것들도 모두가 국회에서 법을 통해 다루어야 하는 중요 정책인 것이다.
부동산 가격안정을 위한 부동산세제는 어떻게 해야 하며, 교육문제와 의료문제는 어떻게 개혁해야 국민들이 다함께 더 잘살 수 있게 되는지가 모두 국회에서 법을 통해 정할 정책인데, 이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나 경쟁없이 그저 모든 후보들이 지역선심성 공약(空約)만 남발하는 분위기다. 루소가 다시 살아서 우리 선거를 평한다면 무엇이라 할지 두려운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