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언론인 | ||
정권이 바뀌면 대통령 참모나 장관 등 정치적 책임이 따르는 고위 공직자들도 물갈이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새 정권의 정책노선과 선거공약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집권당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인물이 들어서야 한다는 것이 이른바 논공행상 인사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논리다. 그러나 고위직만 바꾸는 게 아니라 밑으로 내려가면서 하위직까지 대폭 갈아 치우는 ‘인사 쓰나미’가 되풀이되는 것이 문제다.
4·9 총선이 한나라당의 승리로 끝나자 약속이나 한 듯 공기업과 정부 산하 단체장들이 잇달아 사표를 제출했다. 전 정권에 의해 정치적으로 임명된 기관장들은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이 총선 승리로 힘을 얻었기 때문이리라. 게다가 감사원이 공기업 등을 향해 ‘전가의 보도’를 빼들자 더 버티었다간 험한 꼴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도 작용했을 것이다.
지난 대선을 승리로 이끄는 데 기여한 이명박 캠프의 공신들과 참모들의 상당수는 아직도 ‘강호연군가(江湖戀君歌)’를 읊조리며 청와대 쪽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총선 때 공천이나 비례대표로 보상을 받지 못하고 금배지까지는 아니라도 공기업이나 산하단체에라도 갔으면 하는 사람들은 자리가 하루라도 빨리 비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공기업이나 산하단체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인사를 두고 코드인사니 보은인사니 하며 비판했던 세력들이 집권여당이 되자 지난날 정권교체 때마다 되풀이했던 엽관(獵官)인사의 전철을 밟으려하고 있다. 내거는 간판이야 공개모집이라지만 그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동안 역대 정권이 공모라는 간판을 내걸고 뒤로는 자기사람을 심는 논공행상 인사를 서슴없이 했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엽관제를 공식 채택한 것은 제7대 대통령 앤드류 잭슨이었다. “우리의 자유를 영원히 보장하는 데는 관직의 윤번 교대제가 필요하다”는 명분이었다.
한국 대통령이 국가공무원법과 정부조직법 등에 근거하여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는 국무위원과 헌법기관, 정부투자기관, 산하기관 등 7000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여기에다 장·차관이니 기관장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까지 합치면 몇 만 개가 된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법으로 정한 대통령의 인사권은 존중되어야 한다. 다만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당에 대한 충성도나 기여도에 따라 감투를 나누어주는 정실인사는 없어져야 한다. 보은과 정실로 얼룩진 실패한 인사는 부메랑의 화살로 되돌아와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게 마련이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도 있지만 대통령에 대한 후세의 평가는 용인(用人)을 얼마나 잘했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