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향 수원대 교수 | ||
저 여린 손들이 전해준 촛불이 20~30대의 청년들에게, 유모차를 끌고 나오는 착한 모성들에게까지 번져가 광화문을 메우고 전국 각 도시를 메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통령은 저 현실을 기습이라 느낄까, 민심이라 느낄까.
100일밖에 안된 대통령이 저렇게 발목이 묶이면 어떻게 하나. 그런데 누가 대통령의 발목을 잡는 것일까. 혹시 대통령 스스로가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승자박인 것은 아닌지. 이명박 대통령은 늘 섬김의 정치를 말하고 겸손을 말해왔다. 그러나 내각구성에서도, 비서진 구성에서도, 대운하문제에서도 그는 겸손하지도 못했고 정직하지도 못했다. 지금 성난 민심의 촉발제가 된 쇠고기 협상에서는 어느 나라 정부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민심을 그저 ‘설득’이나 ‘홍보’의 부족으로 돌렸다. 촛불은 성찰을 모르는 저 고압적인 자세에 대한 안타까움이며 저항이 아닐까.
저 성난 민심을 소속을 감추고 명찰을 가린 전경으로 다스릴 수 있을까. 사실 공권력은 폭력이다. 그러나 그 물리력을 폭력이라 하지 않고 공권력이라 하는 것은 국민이 거기에 정당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정당성이야말로 공권력의 기반인 것이다. 당연히 정당성이라는 도덕적 기반이 무너지면 공권력은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세상에, 소속부대명을 지우고 명찰도 뗀 경찰이 어떻게 시민 앞에 서는가. 그것은 민중의 지팡이로서의 행태가 아니다. 누가 저 부끄럽기도 하고 치사하기도 한 명령을 내렸을까. 반드시 책임소재를 가려야 한다. 폭력이 익명성 뒤에 숨는 건 범죄집단이나 하는 짓이다. 21세기를 호흡하는 자존의 나라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훼손하고 대한민국 경찰의 자존심을 훼손한 저 사건에 대해 경찰의 수장은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
대통령은 사람을 아낀다고 한다. 함부로 내치지 않는다고. 진짜 사람을 아끼는 것은 그저 내치지 않고 수족으로만 부리는 것이 아니라 임명된 사람이 자기철학에 따라 일을 할 수 있도록 자율권을 주는 것이다. 나는 놀랐다. 대통령이 대운하에 대해 말을 바꿀 때마다 장관들이 앵무새처럼 말을 바꿔 그 말을 따라하고 있는 것에. 게다가 국토해양부에서 대운하를 건설하겠다고 하면 그 건설의 논리를 조목조목 따져봐야 하는 환경부 아닌가. 그런데 환경부에서조차 몰래 비밀 작전 펴듯 대운하 추진팀을 구성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럴 거면 환경부는 뭐 하러 두나. 그것은 대통령이 사람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 한 사람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모든 권력이 대통령에서 나오는 것이다. 무서운 것이고 대통령 스스로가 제일 먼저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17%까지 지지도가 하락한 대통령의 지지도 회복가능성은 55%라고 한다(KBS 조사). 나는 대통령의 지지도가 빨리 회복됐으면 좋겠다. 그건 어렵지 않다. 대통령 스스로가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국민의 마음 속에 켠 촛불을 대통령이 겸손하게 마음으로 받아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