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거일 소설가 | ||
들끓는 민심을 가라앉히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은 비서실과 내각을 크게 바꾸겠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사람들을 찾아야 하는가.
먼저 살펴야 할 것은 첫 인사가 실패한 까닭이다. 이 대통령은 자신이 사귀어 평가한 사람들만을 쓰는 듯하다. 나라를 다스리는 지도자에게 그런 방식은 위험하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과 사귀었다 하더라도 한 사람이 평생 직접 만날 수 있는 사람들엔 근본적 제약이 있다. 자연히, 그런 사람들만을 인재군(人材群)으로 삼으면 요직에 뽑힌 사람들 전체엔 체계적 편향(systemic bias)이 있게 마련이다. 모두 부동산을 많이 가졌다는 점이 부각된 것은 그런 체계적 편향의 위험을 잘 보여주었다.
따라서 이 대통령은 인재군을 넓혀야 한다. 다행히 그도 그 점을 깨달아서 도덕성과 출신 지역에 마음을 쓰겠다고 약속했다.
이제 이 대통령은 어떤 재능을 지닌 사람들을 뽑아야 하는가. 정치적 경험과 능력을 지닌 사람들을 많이 써야 한다는 얘기가 자주 나오고 이 대통령 자신도 그런 사람들을 중용할 뜻을 비쳤다. 옳은 얘기다.
이 대통령에게 필요한 또 하나의 집단은 지적으로 뛰어난 사람들이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지시를 충실히 실행할 사람들을 찾는다. 그런 기능적 인물들만을 모으면 지도자는 사회의 큰 흐름을 읽어내기 어렵다. 지금 그에겐 사회를 통찰해서 정권이 할 일들을 ‘꿈’으로 제시할 능력을 지닌 지식인들도 필요하다.
지식엔 세 부류가 있다. 하나는 우리가 안다는 것을 아는 지식이다. 미국 국방장관을 지낸 도널드 럼스펠드(Donald Rumsfeld)의 표현을 빌리면, ‘known known’이다. 그 너머엔 우리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지식(known unknown)이 있다. 예컨대, 우리는 프리온이 다른 단백질들을 변형시켜 광우병을 일으킨다는 것을 안다. 그 지식은 ‘known known’이다. 그러나 우리는 프리온이 그렇게 단백질들을 변형시키는 과정에 대해선 아직 잘 모른다. 지금 우리에겐 그것은 ‘known unknown’이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라는 공자 말씀은 이런 사정을 가리킨 것이다.
그러나 지식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너머엔 우리가 모른다는 것조차도 모르는 종류의 지식(unknown unknown)이 있다. 1960년대 이전 과학자들은 프리온의 존재를 몰랐다. 그때의 인류에게 프리온은 ‘unknown unknown’이었다.
점점 빠르게 바뀌는 현대 사회에선 누구도 자신이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따라서 지도자는 자신이 모르는 줄도 모르는 지식들까지 고려해서 정책을 마련할 수 있는 지식인들을 둘레에 두어야 한다.
물론 첫 인선엔 대학 교수들이 많이 뽑혔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뛰어난 지식인들은 드물었다. 그들의 문제는 교수들이었다는 것이 아니라 뛰어난 지식인들이 못 되었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 점을 살펴서 둘레에 뛰어난 지식인들을 두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