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언론인 | ||
프랑스의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피에르 카르댕이 1992년 12월 디자이너로서는 처음으로 프랑스 예술원 정회원으로 선출되었다. 장 곡토가 “예술원 회원이 되면 의자보다 관(棺)을 먼저 준비해야 한다”고 빈정거릴 정도로 문턱 높기로 유명한 프랑스 예술원이 디자이너에게, 그것도 이탈리아 출신에게 회원 자격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패션도 예술임을 공인한 것이자 전 세계에 문을 개방하고 있는 프랑스 문화의 포용력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지난 5월 20일, 서울의 한 호텔 그랜드 볼룸에서는 한국의 제1세대 패션 디자이너인 최경자 국제 패션디자인학원 명예이사장의 패션교육 70주년을 기념하는 패션 쇼가 열렸다. 올해는 최 씨가 함흥 양재전문학원을 연 지 꼭 7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아무리 고희(古稀)라는 말이 무색해진 세상이라지만 70년을 한 가지 일에 정진해 온 96세의 연륜이 새삼 돋보였다.
얼마 전 서울의 한 일간신문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연재했던 노라노(노명자) 씨는 일찌기 해외로 눈을 돌려 1970년대에 미국 뉴욕 맨해튼 7번가에 노라노 이름 석자를 내건 쇼룸을 열었던 1세대 패션 디자이너다. 그런가하면 독특한 복장과 화려한 패션 쇼로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끌고 있는 앙드레 김은 패션 쇼와 엔터테인먼트를 접목하여 패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패션 디자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산업에서의 비중이 커졌음에도 노라노나 앙드레 김 같은 패션 디자이너가 프랑스의 피에르 카르댕처럼 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대한민국 예술원은 1954년 출범 당시의 문학, 음악, 미술, 연극·영화·무용 등 4개 분과의 순수 문화예술인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이 진보적이이라는 프랑스에서도 1992년에야 복식예술에 예술원의 문을 열어주지 않았는가.
문제는 앙드레 김이 예술원 회원이 되느냐 안 되느냐가 아니라 아직도 패션 디자인을 예술의 한 부문으로 알기보다는 섬유산업의 종속적인 기능쯤으로 아는 후진적인 인식이다. 이는 패션 디자인의 주무관서가 문화체육관광부가 아니라 지식경제부의 생활섬유 관련 부서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정작 문화 예술 주무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에야 패션 디자인 쪽에 조금씩 관심을 기울이는 단계라고 한다.
국가 간의 무역장벽이 낮아지면서 패션산업도 국경을 넘나들며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 내는 세상이다. 우리가 치열한 세계시장에서 외국의 내로라하는 유명 상표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마케팅 논리 못지않게 우리의 복식문화를 독자적인 예술로 육성하고 지원하는 당국의 노력이 절실하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