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언론인 | ||
어려서부터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을 분명하게 표정으로 나타내는 미국인들은 난처하거나 멋쩍은 처지에 놓이면 씁쓸한 웃음을 짓는 동양사람들의 ‘복합적인 미소’를 이해하지 못한다. 오랫동안 전제정치 체제에서 살아온 동양 사람들은 어떤 정치적 격변,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해도 자신의 감정을 결코 바깥으로 드러내지 않는 ‘처변불경(處變不驚)의 무표정’을 덕목으로 배워왔다.
오래전 미국의 사진잡지 <라이프>가 서울에서 연 ‘인간가족’이라는 제목의 보도사진전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파안대소(破顔大笑)하는 이승만 대통령의 사진이었다. 표정변화가 거의 없는 동양 사람의 표정치고는 파격적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라이프>는 이승만 대통령의 환한 웃음을 통해 항상 근엄한 표정을 풀지 않는 아시아 지도자들과는 다른 지도자라는 점을 부각하고 싶었을 것이다.
권위주의 체제가 무너지고 무표정을 군자의 덕목으로 아는 유교적 가치가 무너지면서 아시아 지도자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살아나고 있다. 미국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엘비스 프레슬리의 춤을 흉내 낸 고이즈미(小泉俊一郞) 일본 총리나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과 힘차게 악수하며 파안대소하는 이명박 대통령에게서 우리는 표정이 살아있는 아시아 지도자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너무 잦은 파안대소나 과장된 제스처는 자칫 국민들에게 언행이 너무 가벼워 보인다는 인상을 주기 쉽다. 더구나 정치가 꼬이고 국정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에는 대통령의 웃음이나 과장된 몸짓이 오히려 국민들의 거부감을 자극하기 십상이다. 얼마 전에는 국회 개원연설을 위해 국회에 온 대통령이 본 회의장에 들어서면서 싱글벙글 웃었대서 뒷말이 있었다. 금강산에서 관광객이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했다는 것을 보고 받은 상황에서 어떻게 웃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G-8회의 참석차 일본 홋가이도에 간 대통령이 부시 미국대통령을 만나 파안대소한 것도 뒷말이 따랐다. 미국산 쇠고기로 빚어진 국민의 정서를 너무 모른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대통령이 근엄한 표정으로 군림하며 국민을 가르치고 꾸짖고 야단치는 권위주의 시대도 아니며 계몽군주 시대도 아니다. 대통령이 국민과 고락을 함께하며 민의를 살피고 읽어내는 이른바 ‘소통의 시대’다. 대통령이 밝은 표정으로 국민 앞에 나서는 것은 보기에도 좋다. 그러나 시국이 꼬이고 민생이 고달플 때는 대통령도 파안대소보다는 국민과 함께 고뇌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앞으로 대통령의 파안대소에는 때와 장소, 그리고 국민의 정서를 헤아리는 지혜가 따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