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2일 기자회견을 통해 한미군사훈련 중단과 종전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만약 북한이 미국과의 약속대로 비핵화를 이행하고 체제를 보장받는다면 한반도 평화는 꿈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국내 방산업계는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른 시일 내 남북미 합의로 종전이 선언되고, 단계별 군비 감축이 이뤄지면 국내 방산업계는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6·13 지방선거 기간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후보 지원유세에서 남북간 평화체제가 안착되면 국방비를 삭감해 복지에 쓸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2018년 정부 국방예산은 43조 원이다. 국방부는 2021년까지 ‘유능한 안보’를 구현하기 위해 전체 국방예산을 50조 원 규모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계획은 남북간 무력 충돌 가능성을 밑바탕에 둔 것으로, 평화체제가 안착되면 국방예산은 삭감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펴낸 ‘2016~2020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방비 지출 총액은 선진국인 독일과 비슷한 수준이다. GDP(국내총생산) 대비로 따지면 독일보다 2배 이상 높다. 우리나라는 GDP의 약 2.5%를 국방비로 쓰고 있다. 이는 일본(1%), 프랑스(1.93%), 영국(2.05%)은 물론 중국(1.28%)보다 높은 수치다. 미국(3.33%), 러시아(4.18%)가 한국보다 GDP 대비 높은 비율로 국방비를 쓰고 있으나 두 국가는 세계적인 무기 수출국으로 무역수지와 GDP에 방위사업이 적잖은 영향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사정이 다르다. 지난해 산업연구원(KEIT)이 펴낸 ‘2017 KIET 방위산업 통계 및 경쟁력 백서’에 따르면 2016년 국내 방위산업 총생산(금액 기준)은 16조 4000억 원으로 이 가운데 수출 규모는 16%인 2조 6000억 원에 불과하다. 또 올해 산업연구원이 펴낸 ‘2018 KIET 방산수출 10대 유망국가’ 자료에 따르면 국내 방산 수출 총액은 2013~2015년 꾸준히 34억~36억 달러 수준을 유지하다 2016년 25억 달러 규모로 급감했다. 반면 정부는 지난 3년간 미국과 14조 원 규모의 무기 수입 계약을 체결해 무역수지로는 적자를 기록했다.
국내 방산업계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 LIG넥스원, 한화 방산 계열사(한화시스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대기업의 생산 비중이 84%를 차지한다. 즉 진입장벽이 높은 대기업 위주 시장인 셈이다. 2013년 320개였던 방산업체는 2014년 289개로 줄어든 뒤 현재까지 큰 폭의 변화가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내수 생산은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도발 등 안보 위협이 증가하던 시기인 2012~2016년 연평균 8.7%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포대 등 추가 장비 투입 중인 경북 성주군 성주골프장 . 미군 UH-60 블랙호크 헬기 1대가 유류 등 물자 수송을 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미국 트럼프 정부가 출범했을 때만 해도 증권가에선 KAI 등 방산업체를 최대 수혜주로 꼽는 리포트가 잇따랐다. 문재인 정부의 ‘자주국방’ 공약도 힘을 더했다. 하지만 올해 평창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남북관계가 점차 누그러질 조짐을 보이면서 방산주에 대한 투자심리가 악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상장사에 대해 비판적인 리포트가 금기시돼 있어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항공 등 첨단사업 부문을 제외하고 모멘텀이 약해진 측면은 어느 정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방산업계는 저마다 해외 판로 확대를 통해 장기적인 수익성을 확보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수익성 측면에서 가장 유망한 분야는 항공이다. 전체 수출 가운데 항공 분야 비중은 35.8%에 이른다. 화력은 K-9 자주포 수출 확대 등으로 29.1%까지 비중이 높아졌고, 함정이 22.6%로 뒤를 이었다. 우리 정부는 인도네시아 정부와 차세대 전투기 보라매를 합작 개발 중이며, KAI는 군수업체 록히드마틴과 컨소시엄을 맺고 미국 공군 노후 훈련기 교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선진국은 국방비를 수년째 동결하거나 감축하는 추세다. 반면 아시아에선 오히려 무기 수입 규모가 늘고 있다. 중동지역의 종교분쟁, 중국을 중심으로 한 자원분쟁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방산업계에 따르면 세계 무기 수입국 1위는 인도, 2위는 사우디아라비아, 3위는 아랍에미리트(UAE)다. 방산업계는 서유럽 국가에서 잇달아 발생한 테러와 트럼프 대통령의 이른바 ‘무기외교’가 침체된 세계 시장을 되살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진단한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해외 수출은 아직까지 노력에 비해 성과가 미미하다. 미국 공군 노후기 교체 사업은 뚜렷한 진전이 없는 상태며, KAI가 개발한 FA-50 수출 역시 계약국인 아르헨티나의 경제 악화로 전망이 불투명하다. KAI의 한 인사는 “중동의 경우 수출 계약을 맺고도 정작 현지 정세가 불안해 수천억 원의 대금을 제때에 지급하지 못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KAI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 개인 변호사인 마이클 코언의 페이퍼컴퍼니에 15만 달러를 송금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미국 현지에서 논란을 빚기도 했다.
방산업계로서 그나마 다행인 점은 최근 필리핀 정부가 한국의 잠수함, 항공기 등을 구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데 있다. 앞의 인사는 “기업의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부분은 외교로 풀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며 “다른 업체도 다 마찬가지 생각일 것”이라고 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