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필상 고려대 교수·전 총장 | ||
문제의 발단은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이다. 지난달 정부는 환율의 급격한 상승을 막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대거 푸는 초강수 정책을 폈다. 그러나 환율은 잠시 내린 후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시장의 달러 사자 세력이 반격을 한 것이다. 결국 정부는 150억 달러에 이르는 외화보유액을 낭비하고 시장에 지고 말았다. 정부의 신뢰가 무너지자 외환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달러당 1100원선을 넘나들며 시장을 위기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정부가 아무리 위기설이 근거가 없다고 해도 시장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1997년 경제의 기초가 튼튼해 외환위기는 절대 없다는 정부의 거짓말을 떠올리며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다.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의 가능성은 적으나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우선 경기침체 속에 물가가 치솟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본격화되면서 성장률이 3%대로 떨어지고 있다. 또한 수출로 버티던 경제가 100억 달러가 넘는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더욱이 가계와 중소기업의 연쇄부도위험으로 관련 금융기관들의 부실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중소건설업체와 저축은행들의 동반부실은 위험수위를 넘었다. 외국자본이 대거 이탈하여 자본수지적자가 벌써 110억 달러에 이른다. 이런 상태에서 정부의 정책을 믿지 못하게 되자 경제가 방향감각을 잃고 추락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정부에 대한 신뢰는 출범 초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정부는 맹목적인 성장주의에 얽매여 대운하 건설 등 과거의 개발정책을 서둘렀다. 우리 경제는 극심한 양극화로 인해서 중소기업과 중산층이 무너져 허리가 끊긴 상태다. 여기에 불황의 파도가 밀어닥쳐 경제하부구조가 거의 기능 마비다. 이런 상태에 무조건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시대역행적인 정책을 강요하자 경제는 좌절감에 빠졌다. 최근 18대 국회가 개원되자 정부는 갖가지 정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정책마다 또 실망이다. 공기업 선진화 정책이나 민영화 등 개혁은 뒷전으로 미루고 권력 주변의 인물들을 낙하산식으로 인사하는 데 급급하다. 부동산정책도 신도시건설과 재건축활성화 등 건설공사만 늘리겠다는 정책뿐이다. 아파트를 살 사람이 없어 미분양만 늘 전망이다. 성장정책의 시금석이라고 하는 세제개편도 상속·증여세, 양도소득세 등 고소득층을 위한 감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업투자보다는 부동산 시장 불안만 다시 야기할 소지가 크다.
정부가 출범 6개월 만에 국민의 신뢰를 잃고 경제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외환위기보다 무서운 것이 민심이반이다. 민심이 이반하면 정부는 식물상태가 되고 경제는 침몰한다. 최고정책 결정자가 직접 나서 정책의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정부는 중심을 확고히 잡고 시장안정화에 본연의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더 나아가 경제 실상을 올바르게 알리고 경제 살리기 청사진을 다시 그려야 한다. 이에 따라 신산업 발굴과 기업투자 활성화에 매진하여 일자리를 창출하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새로운 경제정책의 패러다임을 구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