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패소가 다른 ISD를 앞둔 우리 정부에 악재로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우리 정부는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제기한 ISD 연내 판정을 앞두고 있으며,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엘리엇)도 우리 정부를 상대로 ISD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1월 국회 본관 앞에서 벌어진 ‘국부유출 론스타 먹튀 매각 승인 규탄대회’ 모습. 유장훈 기자.
ISD(Investor State Dispute·ISD)란 외국투자기업이 현지 정부의 불합리한 정책이나 차별 등으로 손실을 입었을 경우 해당국을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에 제소할 수 있는 제도다. 다시 말해, 현지 정부가 외국투자기업이 투자·운영하는 기업을 부당하게 규제하거나 자국 기업과 차별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라고 할 수 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2011년 11월 발행한 보고서 ‘이슈와 논점’에 따르면 ISD 절차로 주로 활용되는 ICSID는 1966년 10월 14일 발효된 ‘국가와 타방국가의 국민간의 투자분쟁해결에 관한 협약(워싱턴 협약)’에 따라 창설된 세계은행 산하 기구로서, 2011년 5월 기준 147개 회원국에 ISD 절차를 제공하고 있다. ICSID가 인적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는 근거로는 양자투자협정(BIT), 투자자와 투자유치국이 체결한 투자계약, 투자유치국의 투자 법률, NAFTA, 에너지 헌장 조약, 도미니카 공화국-미국-중미 FTA, ASEAN 협정이 있다. 이 가운데 양자투자협정(BIT)이 차지하는 비율은 62%로 가장 크다. 우리나라 역시 147개 회원국에 포함된다.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당시 ISD조항을 두고 ‘독소조항’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송기호 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국제통상위원회 위원장은 “ISD는 주로 BIT 체결로 도입되며, FTA의 조항으로 포함될 경우 그 위력이 훨씬 커진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국제적으로 1992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국제 중재 사건이 증가했으며 국내에는 1990년대 이후 외국 자본이 들어오면서 국제 중재 사건이 늘었다.
ISD에 대한 필요성은 국제적으로 설왕설래가 계속되고 있다. ISD 도입을 반대하는 쪽에서는 ISD 자체가 외국인 투자자가 제기하는 것이므로 국내의 상황과 현실, 문법을 설득하지 못하면 소송에서 질 가능성이 높고, 투자자 보호가 남용돼 국가의 주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호주의 경우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2004년 미국과 맺은 FTA에서 ISD를 제외했다. 반면 ISD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외국인 투자 유치 효과를 높이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다야니가의 제소 외에도 우리 정부는 2010년대 들어 외국기업에 잇달아 ISD에 제소됐다. 2012년 론스타는 외환은행 지분 매각과 관련해 5조 원대의 배상을 요구했다. 론스타는 2007년 HSBC에 외환은행을 매각하려 했으나 정부의 승인을 받지 못해 매각이 무산됐으며, 2012년 하나금융에 매각하기 전까지 우리 정부의 매각 지연 탓에 가격이 하락했다고 주장했다. 해당 건은 2016년 4차 심리를 끝으로 재판 절차가 마무리돼 연내 최종결정이 나올 예정이다.
2015년 5월에는 아랍에미리트 부호 ‘만수르(셰이크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흐얀)’의 석유 투자회사 하노칼에 제소당했다. 하노칼은 2010년 현대중공업에 현대오일뱅크 주식을 매각할 당시 우리 과세당국이 매각대금의 10%인 1800억 원의 세금을 원천 징수하자 한-네덜란드 투자보호협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세청은 하노칼이 조세회피를 목적으로 한 페이퍼컴퍼니이며 실질적 소유주는 IPIC이므로 정당한 과세라고 맞붙었다. 이 건은 하노칼이 이듬해 소송을 취하하며 마무리됐다.
이번 패소와 관련해 우리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 긴급 분쟁대응단 회의를 열고 취소소송 신청을 검토하는 등 대응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취소소송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단심제인 ISD의 취소소송은 국내 재판의 ‘항소’가 아니라 ‘재심’의 의미를 갖는다. 취소소송은 판정에 중대한 하자가 있거나 중재판정부가 적법하게 구성되지 않았을 경우 하는데, 사실상 이 같은 가능성은 낮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국제통상위원회 소속 김종우 변호사는 “중재에서 인정된 금액이 730억 원이지만, 소송비용 등을 포함하면 1000억 가까이 배상해야 할 것”이라며 “취소소송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가능성이 매우 낮고 만약 취소 신청이 인정돼 중재를 다시 한다 하더라도 다시 2~3년이 더 걸리고 그만큼 소송비용도 더 든다”고 말했다.
이번 패소가 앞으로 있을 ISD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우리 정부는 소송에 혈세가 투입됨에도 불구하고 과거 론스타와 관련된 ISD를 비공개로 진행해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번 다야니가와의 ISD 관련 내용 또한 후속 조치가 결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번 소송을 담당했던 금융위원회는 지난 14일 해명자료를 통해 “현재 관계부처 합동으로 중재판정 정정신청⋅취소신청 여부 등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으며,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ISD 경험이 많은 미국과 캐나다의 경우 정보 공개를 통해 투명성을 높이고 있다.
김 변호사는 “사건에 따라 중재판정부가 따로 선임되고 사건 또한 다르므로 일반적인 유불리를 따질 수는 없다”면서도 “이번 패소로 우리 정부의 잘못이 확인된 셈인데, 더욱이 ISD 관련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등 불투명한 행정이 참고될 가능성은 있다”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또 “중재 과정을 공개하지 않는 우리 정부에 대해 ‘트랜스 패런시(투명성)가 부족하다’, ‘숨기는 것이 많다’는 인식이 생길 수 있다”며 “론스타의 경우 행정 이유를 정확히 밝히지 않은 반면, 언론에 관련 내용을 흘려 분위기를 조성하고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엘리엇 역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개입해 손해를 봤다며 ISD를 추진하고 있다. 법무부가 지난 11일 공개한 ‘ISD 중재의향서’에 따르면 엘리엇은 7200억 원의 피해보상 청구 금액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경쟁 로펌서 인재 쏙쏙…광장이 엘리엇 맡는다 법무부는 지난달 말 엘리엇이 추진 중인 ISD에 대응하기 위해 법무법인 광장을 법률대리인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법무법인 광장은 영국계 로펌 ‘프레시필즈’와 함께 엘리엇 측 법률대리인인 영국계 로펌 ‘쓰리 크라운’과 맞서게 됐다. 앞서 법무부는 국내 대형 로펌 7곳(김앤장·세종·태평양·광장·화우·율촌·지평)에 제안요청서를 보낸 뒤 이에 응한 로펌 6곳을 상대로 심사해 최종 선정했다. 정부가 요청서를 보낸 로펌 7곳 가운데 태평양은 론스타 건을 맡고 있어 의향서 제출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엘리엇 ISD 소송을 두고 대형 로펌들의 수임 경쟁이 치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ISD의 경우 일반적으로 외국 로펌이 주도하고 국내 로펌은 보조적 자문을 맡지만, 승소하면 글로벌 로펌으로 이름을 알릴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광장은 이번 수임을 위해 김앤장과 세종 등 다른 로펌에서 ISD 담당 인력을 영입하는 등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전해진다. 법조계에 따르면 중소 로펌의 ISD 참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중소 로펌의 경우 국제 중재 사건 경험이 전무할 뿐 아니라 국제 중재전문팀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 통상 전문 변호사는 “국내에는 6곳 정도의 대형 로펌에 중재팀이 있고, 정부도 이들에 입찰을 제안한다”며 “전문적인 중재팀이 있어야만 가능하므로 국제 담당의 풀이 좁은 중소 로펌들은 제외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다른 변호사는 “ISD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수임료 등 소송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를 들어 비판하기도 한다”며 “ISD가 대형 로펌에 새로운 시장을 열어준 셈”이라고 말했다. [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