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몰지각한 선거비용 먹튀 후보들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은 자신이 고용한 선거운동원들의 임금을 떼먹기도 하고, 선거 기간 사용한 각종 비용들을 나 몰라라 하는 식으로 주변인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일부 선거 기획사는 먹튀 후보들 때문에 파산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이 선거 벽보를 부착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선거 기획사 관계자는 “선거캠프에서는 대부분 선거 끝나고 정산하자고 하지만 저 같은 경우는 우리 가족이 출마해도 이젠 선불 안주면 일 안한다고 한다. 뻔뻔한 후보들이 상당히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선거 기획사 관계자는 “우리도 마음 편하게 선불 받고 일하고 싶지만 대부분 후보들은 그런 업체에 일을 안 맡기려 한다. 선불 달라고 했더니 내가 15%도 안 나올 거 같으냐며 화를 내는 후보도 있었다”고 말했다.
후보자가 득표수 15% 이상을 얻을 경우 선거비용의 100%를 보전 받을 수 있다. 득표수 10% 이상을 얻을 경우 선거비용의 50%를 보전 받을 수 있고, 10% 미만을 득표한 후보는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한다. 따라서 후보자가 득표수 15%만 넘기면 별다른 문제가 없다.
앞서의 관계자는 “선관위에서 관리를 하기 때문에 선거비용을 보전 받는 경우는 떼먹는 것이 불가능하다. 문제는 선거비용을 보전 받지 못하는 군소정당, 군소후보들”이라면서도 “최근에는 당이 난립하면서 제1야당 후보조차 득표수 15%를 넘기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생기고 있다. 단일화 등으로 후보가 중도 사퇴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안심하고 선거 관련 일을 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후보자가 득표수 15%를 넘겼다고 마냥 안심할 수도 없다. 과거 한 후보자는 득표수 15%를 넘겨 선거비용 전액을 보전 받았지만 이전에 더 큰 빚이 있어 보전 받은 선거비용이 은행에서 몽땅 빠져나간 경우도 있었다.
더 극단적인 사례도 있다. 낙선한 후보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자살하는 경우다. 이 경우 초상집에 가서 돈을 내놓으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실제로 지난 2014년 지방선거가 끝난 이후 낙선한 후보자들이 목숨을 끊거나 자살을 기도하다 구조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기도 했다.
앞서의 관계자는 “매번 낙선하면서 습관적으로 출마하는 후보도 있다. 그런 분들 재산공개 내역을 보면 마이너스다. 선거 끝나면 연락도 안 되고 그런 분들은 재산이 없으니까 법적으로 걸어도 받아낼 방법이 없다. 재판 걸어봐야 (소송비용 등으로) 기획사만 거덜 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언론들도 선거 끝나면 그런 일에 대해서는 신경을 안 쓰니까 정치 하겠다는 사람들이 영세업체를 등쳐먹는 것”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관계자는 “우리같이 잔뼈가 굵은 업체는 그런 분들 의뢰는 받지 않는다. 이 바닥을 잘 모르는 신생업체가 그런 분들 의뢰를 덜컥 받았다가 나중에 고생한다”면서 “선거비용 떼먹은 후보가 다음 선거에 또 출마하니까 한 업체 대표가 유세장을 쫓아다니면서 돈 달라고 난동을 피웠던 적도 있다. 그런데 선관위에서는 선거 방해하면 불법이라고 오히려 업체 대표를 제지했다. 선거 비용을 완불하지 않은 비양심 후보는 최소한 다음 선거에는 못 나오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선거 기획사 관계자는 “돈을 다 떼먹는 건 아니지만 선거가 끝나면 막무가내로 대금을 깎아달라고 하는 후보자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 관계자는 “일례로 이번 선거에서도 한 후보자가 유세차가 마음에 안 들었다면서 돈을 다 못주겠다고 한다. 선거 자주 나오는 분들은 어떤 방식으로 비용을 떼먹고 깎아야 하는지 잘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일이 잘못되더라도 손해가 크지 않으니까 작은 군의원 선거 같으면 정당이 이상해도 일을 맡는다. 광역단체장 선거는 무서워서 못 맡겠더라. 이번 선거 때 한 광역단체 후보 측으로부터 의뢰를 받았는데 거절했다. 선거 비용이 수십억 원인데 잘못되면 회사가 망한다”고 말했다.
일부 후보자는 선거운동원의 임금을 떼먹는 경우도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선거운동원으로 일했던 한 인사는 선거가 끝나면 입금해주겠다는 후보자의 말만 믿고 기다렸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후보자하고는 연락도 닿지 않았다. 결국 후보자가 속했던 정당에 전화를 걸어 항의를 해봤지만 ‘우리 당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무책임한 답변만 돌아왔다고 하소연했다.
선거운동원도 근로자지만 근무기간이 한 달도 되지 않아 근로계약서를 제대로 쓰지 않고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임금을 떼여도 구제받기가 쉽지 않다.
선거 때마다 후보들이 시행하는 정치인 펀드도 먹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정치인 펀드는 후보자가 선거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일반 국민들로부터 돈을 빌려 쓴 뒤 선거가 끝나고 이자를 더해 갚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정치인 펀드는 전 세계적으로 사례가 없는 우리나라만의 제도다. 후보자가 선거가 끝난 후 펀드 환급을 하지 않아도 이를 처벌할 마땅한 근거가 없다. 이 경우 펀드에 참여했던 시민들이 민사 소송 등을 통해 돈을 돌려받아야 한다.
실제로 펀드 투자금이 반환되지 않아 투자자들이 곤욕을 치렀던 사례도 있다. 정치인 펀드를 최초로 만든 사람은 현재 방송인으로 활약하고 있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유 전 장관은 지난 2010년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하면서 최초로 정치인 펀드를 만들어 41억 원을 모았다.
유 전 장관은 경기도지사 후보 때 모은 펀드는 반환했지만 국민참여당 대표로 있으면서 정당 운영자금 명목으로 모금한 펀드는 반환하지 않았다. 국민참여당이 통합진보당으로 통합되자 내부에서 서로 반환 책임을 떠밀었기 때문이다. 결국 투자자들은 통합진보당을 상대로 투자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정치권에선 이 같은 선거비용 먹튀 현상과 관련해 후보자들에게만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는 정치 후원금 제도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아 발생하는 구조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무소속이나 군소·신생정당에 가혹한 선거제도부터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