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거일 소설가 | ||
첫째, 세계적 현상이다.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세계는 이미 하나의 체계다. 그래서 한 나라에서 일어난 사건은 이내 온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이번 위기가 세계 경제의 중심부인 미국의 금융 시장에서 비롯했으므로 그 영향은 특히 컸고 널리 퍼졌다.
둘째, 근본적 원인은 미국 중앙은행이 경기를 떠받치려고 금리를 너무 낮게 유지한 것이다. 금리가 낮아 자금이 싸니 미국 시민들은 소비를 늘리고 집을 많이 샀다. 그런 거품이 꺼지자 집을 담보로 잡고 자금을 빌려준 은행들이 큰 손실을 보았다. 그래서 자금 시장이 위축된 것이 이번 위기다. 부동산 거품은 거의 모든 나라들에서 나왔고 지금 우리가 걱정하는 것도 바로 그런 거품의 존재다.
셋째, 시원스러운 해결책이 없다. 현대의 금융 시장은 아주 촘촘히 얽혀진 체계여서 한 금융 기업에 생긴 문제는 많은 기업들에 영향을 미친다. 금융 기업들이 알게 모르게 서로 투자하므로 한 기업이 도산하면 다른 기업들도 재정 상태가 갑자기 악화된다.
특히 파생 금융 상품(financial derivative) 시장의 폭발적 성장은 이런 상호의존도를 크게 늘렸다. 파생 금융 상품은 유가증권이지만 독자적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그것의 가치는 다른 본원적 자산(상품, 증권, 또는 통화)의 가치로부터 파생된다. 본원적 자산의 미래 가치에서 자신의 가치가 나오는 선물 계약은 전형적 파생 금융 상품이다. 파생 금융 상품은 위험에 대비하는 연계매매(hedging)에 주로 쓰이는데 이번에는 오히려 금융 시장 전체가 맞은 위험의 폭을 늘렸다.
사정이 이러하니 지금 세계 경제는 ‘몸살’을 앓는 셈이다. 자금이 워낙 싸니 많은 사람들이 빚을 내서 소비하고 집을 샀다. 그런 무리가 이번 몸살을 부른 것이다.
몸살은 괴롭지만 실은 더 큰 병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준다. 만일 몸살이 나지 않으면 우리는 무리를 하는 줄 모르는 채 계속 무리를 하게 되어 더 큰 병에 걸리거나 급사한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이번 몸살은 세계 경제에 대해 더 무리하지 말라는 경고라 할 수 있다.
실은 이번 몸살은 너무 늦게 왔다.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세계 경제가 무리를 해서 거품이 끼었다는 신호가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중앙은행은 그런 신호를 무시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중앙은행도 정치적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중앙은행 총재는 현인으로 존경을 받지만 그도 비난은 피하고 인기는 높일 길을 고른다. 경기가 좋을 때 경제가 무리한다고 경기를 낮추는 정책을 쓰면 그는 거센 비난을 받는다. 경기가 자연적으로 낮아져도 경기를 되살리라는 압력을 받아 거의 언제나 금리를 낮추게 된다. 그래서 작은 몸살들로 끝났을 일을 이번처럼 큰 몸살을 앓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나 경제나 몸살의 경고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무리하는 줄 알면서도 진통제와 같은 임시 방편으로 작은 몸살을 피하는 것은 어리석고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