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14일 오전, 1시간가량 면담을 가진 문재인 대통령이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내놓은 입장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서로 매우 긍정적인 회담이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미국 언론들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분위기도 보이고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 등은 사설 등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시각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적인 보도를 내놨다. 그렇다면 외교·국방 전문가들은 이번 회담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전문가들은 “두루뭉술한 북미 간 합의문 내용을 봤을 때 구체적인 합의 내용이 따로 있을 것이고, 그게 얼마나 지켜질지가 관건인 정상회담”이라고 설명한다. 평가를 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작단계이고, 결과로 이어지기까지는 변수가 많아 지켜봐야 한다는 얘기다.
(사진 = 연합뉴스)
# 두루뭉술한 합의문…이면 합의 존재 가능성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12일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마치고 공동 합의한 문항은 4가지다. ▲양국 국민의 평화와 번영을 바라는 마음으로 새로운 북미 관계를 추진한다 ▲북미는 한반도에서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한다 ▲4·27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하며, 북한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 ▲북미는 전쟁포로 유해를 발굴하기로 한다 등인데, 마지막 전쟁포로 유해 발굴을 제외하고는 매우 두루뭉술한 내용들이다. 특히 미국 측이 그동안 밝혀왔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가 포함되지 않은 것을 놓고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아무 내용이 없는 합의문”이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언론 등 대외에 공개하기 위한 합의문이지, 실제로는 이면 혹은 구두로 합의한 내용이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을 진단한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여러 번 사인한 것을 두고 미공개 합의문에 1~2개 더 있다는 추측도 난무하고 있다. 실제 1994년 제네바 기본 합의 때도 공식적으로 발표한 합의문은 하나뿐이었지만, ‘컨피덴셜’ 형식으로, 일종의 비공개 합의문이 추가로 있었다. 이때도 세부적인 이행 문제는 비공개 합의문에 담겨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전문가들은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존재를 드러내기에는 부담스러운 문서보다는 ‘구두’로 구체적인 합의가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CBS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회담은 실무자들의 회담이 아니다”라며 “만약에 10개를 담아야 되는데 7~8개는 합의되고 2~3개가 합의가 안 되면, 사실 전체를 추상화해서 합의문에 담을 수는 없다”고 맥락을 풀이했다. 익명을 요구한 외교·군사 전문가 역시 “마지막까지 북한과 미국이 협상 자체를 놓고 하느냐 마느냐 기싸움을 할 정도로 어렵게 이뤄진 정상회담이지 않냐”며 “둘이 앞선 갈등과 오해를 풀고 서로 대화를 하겠다는 합의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회담 자체는 성공적이다. 이 다음 대화와 협상이 언제 어떻게, 어떤 내용으로 이뤄질지를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두루뭉술한 합의서에는 포함되지 않은,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합의한 내용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북미 정상회담에 참가한 인물들이 회담 후 내놓은 발언들을 주목해야 한다고 풀이한다.
# 주한미군 철수? “UFG 언급 감안할 때 북한과 신뢰 회복 위한 군사훈련 축소 약속”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2일(현지시간) 북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오는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가진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언급했다. 그는 “주한미군을 가능한 빨리 철수시키고 싶다”면서 “많은 비용,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군사훈련 축소도 언급했다. 북미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그는 한반도 군사적 긴장 완화 등을 위해 ‘군사훈련(war games)’을 중단할 것이라며 한미연합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중단 방침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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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에 대한 유화책 차원에서 북한과 대화하던 도중 나왔을 가능성이 주목되는 대목이다. 실제 미국 CNN은 13일(현지시각) 복수의 미국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미국 국방부가 이번 주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지 결정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세우고 조만간 UFG 중단 방침을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한미 군 당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연합훈련 중단 발언 이후 긴급 협의 채널을 가동해 연합훈련 계획을 변경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 측은 트럼프 대통령의 연합훈련 중단 발언과 관련해 “한미 간 긴밀한 공조가 이뤄지고 있다”며 “군 당국 간 협의 채널이 가동됐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두 차례 정도 훈련을 하지 않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완전 중단은 불가하다고 설명한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은 “한국군의 작전 체계는 미국과의 공조하에 함께하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져 있고, 설사 전작권이 전환된다고 하더라도 미군이 빠질 수 없다”며 “UFG는 미국과 한국이 서로 제대로 작전계획을 이해하고 있는지 검증하고 발전·보완하는 연습인데 이를 없앨 수는 없다”고 내다봤다. 미국 측이 정상회담 과정에서 북측의 요구를 받아들여 양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임시적인 유화책’이라는 평이다.
# 2년이라는 구체적인 시간 언급? “북한 측이 가이드라인 내놨을 가능성”
미국이 북한이 ‘도발’이라고 받아들이는 군사 훈련을 양보하면서 어떤 약속을 받아냈을까. 결국 가장 큰 화두는 비핵화인 만큼, 관련된 언급을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미국 측이 제시한 ‘2년 반’이라는 시간을 의미 있게 봐야 한다고 풀이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방한 후 청와대 및 기자회견 등에서 “우리는 2년 반 안으로 (북한의) ‘주요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북한이 심층적인 검증이 있을 것이라는 점도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고 거듭 밝혔다. 이를 풀이하면 ‘정상회담에서 북한에게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고, 큰 틀에서는 합의를 끝냈다‘는 진단이 가능하다. 특히 2년 반이라는 시점에 대해 앞선 신종우 국장은 ”미국의 정보력을 감안해도 아주 현실적인 시간“이라며 추가 합의 가능성을 주목했다.
신 국장은 ”현재 북한 안에 얼마나 많은 미사일이 있는지, 핵이 있는지 미국조차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며 ”한 번의 회담에서 어디어디 핵이 있고 미사일이 있으니 어덯게 폐기하겠다고 합의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 측이 예의주시하는 장소가 있는데, 북한이 이를 추가 회담 과정에서 제대로 제시하지 않으면 언제든 깨질 수 있다는 것“이라고 우려했는데, 그럼에도 ”북한과 미국이 이를 위한 구체적인 대화 일정부터 비핵화 여부에 대한 확인 과정을 큰 틀에서 구두로 합의했기 때문에 미국 측이 2년 반이라는 것을 성과로 얘기하는 게 아니겠냐“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이 군사 훈련을 양보했기 때문에 북한이 비핵화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먼저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조심스레 덧붙였다.
# 변수는? ”미국 상원 등 인권 부분에 대한 비판적 시각 상당“
변수도 남아 있다. 북한의 비핵화를 확인하는 데까지, 북한의 태도가 바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북한이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나온 것에 대해 ”북한은 얻을 것은 다 얻는 외교를 펼친다“며 ’시간끌기 기만극‘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미국 내 여론도 변수다. 미국 언론을 중심으로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배제한 것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은데, 북한 제재안은 북한 인권과 복잡하게 얽혀 있어 북한 내 10만 명에 육박하는 정치 수용소 수감자 문제 등이 해소되지 않으면 적극적으로 제재를 풀기 어렵다. 북한 외교에 밝은 한 공직자는 ”미국은 우리와 달리, 북한 내 인권 요소를 매우 중요하게 본다“며 ”미국이 이번 회담에서 북한 제재를 풀겠다는 이야기는 일체 없었던 게 이 같은 맥락“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회담 이후 제재 완화에 대한 태도는 북한과 미국이 사뭇 다르다.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대화와 협상을 통한 상호관계 개선의 진전과 함께 미국이 제재를 해제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기자회견에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가 이행될 때까지 북한에 대한 제재는 남아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선 외교 공직자는 ”이번 자리를 통해 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확인했다는 의미가 있지만, 결국 북한도 미국도 상대방이 몽니를 부릴 수 있는 요소를 한 번 양보한 것에 불과하다“며 ”실제 비핵화와 제재 완화까지 가기에는 변수가 너무 많다“고 내다봤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