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거일 소설가 | ||
남의 얘기를 잘 들으려면 남의 삶에 공감할 만큼 따뜻한 가슴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가슴 어느 구석에 남의 얘기를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빈 곳이 있어야 한다.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 이런 조건을 갖추기는 어렵다. 그래서 모두 남의 얘기는 들으려 하지 않고 제 얘기만 한다. 터무니없는 비방과 저주로 가득한 인터넷을 보라.
며칠 전에 서거한 미국 저술가 스터즈 터켈(Louis Studs Terkel)은 남의 얘기를 아주 잘 들은 사람이었다. 실은 남의 얘기를 듣는 것이 그의 직업이었다. 따뜻한 가슴과 남의 얘기를 받아들일 곳을 지닌 그에게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솔직히 얘기했다.
1972년에 나온 그의 <일하기(Working)>엔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 대해 품은 생각들이 담겼다. 갖가지 직업들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꾸밈없이 들려준 얘기들은 많은 사람들의 직업에 관한 선입견을 깨뜨렸다.
그 책에 얘기가 나온 덕분에 널리 알려진 사람들도 있다. 당시 한 식당에서 23년째 일하던 웨이트리스 돌로레스 단테(Dolores Dante)는 대표적이다. 그녀는 돈이 급해서 그 일을 시작했다. 남편과 이혼하니 남은 것은 빚과 세 아이였고, 그녀는 팁이 괜찮은 그 일을 골랐다.
“어떤 웨이트리스들은 상관하지 않아요. 접시를 내려놓으면 그 소리가 들려요. 나는 그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해요. 나는 봉사할 때 내 손들이 옳은 동작을 하기를 원해요. 잔을 집어 들면 딱 옳은 동작이 되기를 바라는 거죠…웨이트리스가 되는 것, 그것은 예술이에요.”
웨이트리스는 팁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흔히 모욕적인 상황을 견뎌야 한다. 그런 직업을 예술이라고 선언하는 돌로레스의 모습은 우리 가슴을 깊이 휘젓는다. 그녀의 얘기보다 직업의 뜻을 잘 드러낸 말은 드물다. 아무리 하찮은 직업이라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겐 예술인 것이다.
물론 예술은 힘들다. 그래서 모든 직업은 힘들다. 제대로 일하려는 사람들에겐. 터켈에게 웨이트리스가 얼마나 힘든 직업인가 설명하다가 돌로레스는 조용히 흐느꼈다.
“밤일이 끝나면 힘이 다 빠진 듯해요. 나는 많은 웨이트리스들이 바로 그것 때문에 알코올 중독자가 된다고 봐요. 대부분의 경우 웨이터나 웨이트리스는 먹지 않아요. 그들은 음식을 다루기 때문에 먹을 시간이 없어요. 주방에서 무엇을 조금, 빵 한 조각 같은 것을 집어 먹죠.”
<일하기>가 나온 뒤, 한 사내가 시카고의 다리를 건너던 터켈을 불러세웠다. 그리고 자신은 돌로레스의 얘기를 읽고서 앞으로는 웨이트리스에게 거칠게 대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노라고 말했다. 그것이 예술의 힘이다. 비록 아무도 높이 여기지 않는 직업에서 나온 예술이긴 하지만.
그렇다 직업의식(professional ism)을 지닌 사람에겐 어떤 직업도 예술이 될 수 있다. 불황이 점점 깊어지고 좋은 일자리들은 점점 줄어드는 지금, 그녀 얘기는 우리가 새삼 새길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