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언론인 | ||
<털 없는 원숭이>의 저자 데스몬드 모리스는 늑대나 영장류의 집단생활을 관찰하다가 서열이 높을수록 몸을 적게 움직이고 좀처럼 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두머리는 이미 여러 차례의 권력쟁탈 ‘리그전’을 통해 자신의 거친 힘을 증명하며 반항하는 자에겐 어떤 보복과 응징이 가해진다는 것도 충분히 보여 주었기 때문에 굳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우두머리의 침묵과 절제는 비단 야생동물의 세계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은 아니다.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도 없다. 누구나 크고 작은 경쟁을 이겨내고 권력을 장악하자면 몸을 바삐 움직이고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화려한 제스처와 레토릭(修辭)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단 권력을 잡고 그 기반이 확고해지면 짧은 몇 마디 말과 최소한의 제스처로 사람을 움직이고 세상을 다스릴 수가 있다. 스페인을 40년 가까이 철권 통치했던 프랑코 총통이 죽기 전 몇 해 동안은 오직 ‘예스’와 ‘노’ 단 두 마디만으로 나라를 통치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프랑스의 ‘제왕적 대통령’이었던 드골 역시 침묵과 절제된 제스처가 오히려 대중을 장악하는 힘이 된다는 것을 알았던 정치인이었다. 이른바 5월사태로 10년 4개월간의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날 때의 퇴임연설은 단 한 문장이었다. “나는 오늘 정오부터 공화국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정지한다.” 참으로 간단 명료했다. 그는 짧고 명료한 연설이 길고 장황한 연설보다 더 위력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요즘 “지금 주식을 사면 최소 1년 이내에 부자가 된다”고 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에 뒷말이 많다. “국내 주가가 많이 떨어졌으나 지금은 주식을 팔 때가 아니라 살 때”라는 말끝에 나온 얘기였다. 이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고국의 경제사정을 걱정하는 로스앤젤레스 교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이명박 대통령의 부적절한 발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했다는 “직접투자가 불가능하면 간접투자 상품(펀드)이라도 사겠다”는 발언이나 언론사 간부들과 만난 자리에서의 “지금은 주식을 살 때”라는 발언 등등에도 뒷말이 많았다.
국민들이 실의에 빠져있을 때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며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북돋아주는 것은 지도자의 미덕일 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 자주 불확실한 미래를 두고 사소한 부분까지 이러쿵 저러쿵 언급하는 것은 자칫 대통령 말씀에 실린 말의 무게를 스스로 낮추는 것이 되기 쉽다. 대통령의 발언을 굳이 ‘나랏님 말씀’이라고 떠받들 것까지는 없어도 국민들이 최고 지도자의 말에 무게를 두지 않고 깃털처럼 가볍게 아는 것은 대통령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나 좋은 일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