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31일 방북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을 접견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모습. 당시 라브로프 장관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오는 9월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에 러시아를 방문해 달라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 친서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그 특이한 움직임은 수상한 열차에 대한 내용이다. 필자는 북한 내부 관계자를 통해 북중정상회담이 열렸던 지난 5월 7일을 전후하여 북한 쪽에서 화물열차 두 기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들어갔다는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물론 국경을 맞대고 철도가 연결된 북-러 사이에 열차가 오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해당 열차 두 기 모두 이전에는 전혀 편성되지 않았던 열차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열차 모두 실려 있는 내용물을 외부에서 절대 확인할 수 없게끔 완전히 폐쇄된 채 들어갔다고 한다.
이 소식을 처음 전한 앞서의 관계자는 그 성격과 정황상 해당 열차 내용물은 단순한 무역 물자가 절대 아니며 당국에 의해 특수편성된 열차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필자는 이 문제의 열차에 대한 복수의 또 다른 관계자와의 접촉 및 추가적인 조사 과정에서 유의미한 추가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두 열차는 각각 함경북도 길주군과 평안북도 영변군에서 편성된 것이었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알겠지만, 두 곳은 북한 핵개발의 핵심지역이다. 길주군은 이제는 폐쇄된 풍계리 핵실험장이 있는 곳이며, 영변군은 너무나 잘 알려진 북한의 핵개발 연구 종합시설들이 자리한 곳이다.
우선 첫 번째로 길주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행 화물열차는 100톤 분량의 차량 10량 이상으로 편성돼 국경을 넘었다고 한다. 그 열차에 실린 내용물은 핵실험에 이용되는 각종 계측 및 관측기구들이라는 전언이다.
북한이 5월 24일 풍계리 핵실험장 폭발을 앞두고 부랴부랴 열차를 편성해 각종 계측기구들을 실어 러시아로 보냈다는 관계자들의 증언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문제의 계측기구들은 내부 갱도와 주변 관측기지 등에 설치됐던 것이라고 한다. 일부는 독일과 중국에서 제작된 것도 있지만, 그 대부분은 러시아에서 만들어진 기종들이었다고 한다.
결국 이 계측기구들은 그동안 북한이 핵개발을 추진함에 있어, 러시아가 물밑에서 장비를 거래 혹은 지원해왔다는 증거로 보일 수 있다는 해석이다. 게다가 당시는 오는 5월 24일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를 앞두고 핵 관련 사찰 전문가들의 입회가 예고되던 시점이었다. 물론 실제로 북한은 최초 약속과 달리 전문가 입회를 취소했다.
북한 러시아를 잇는 유일한 철교인 ‘두만강 철교’의 모습. 연합뉴스
앞서의 말을 종합해 보면, 러시아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를 의식하고 혹시 모를 불상사를 막기 위해 자국에서 과거 북한으로 들여간 계측장비들을 사전에 회수한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북한 당국의 협조 속에서 말이다.
문제는 두 번째 열차다. 영변 인근에서 편성된 이 열차 역시 완벽히 내용물이 덮인 채 국경을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열차는 앞서와 마찬가지로 총 12량 100톤 분량의 큰 규모였다고 한다. 그 내용물은 앞서 길주발 열차보다 더욱 예민한 것들이 실렸다는 후문이다.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 두 번째 열차 안에는 영변 시설에 있던 관측 및 개발 관련 기구들은 물론 그 결과물과 관계 있는 중요 부품들도 포함됐다는 것이다. 부품 중에는 ‘탄두’ 역시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좀 더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북한과 러시아 양국의 협의에 따라 북한의 핵개발과 관련해 민감한 내용물이 담긴 특별 편성 열차가 국경을 넘었다는 것은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부분이다. 특히 넘어간 내용물들은 결국 북한이 미국과의 정상회담 이후 착수될 비핵화 과정에서의 사찰을 의식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만약 그 내용물이 사실이라면 이는 미국과 국제사회가 북한에 바라는 CVID식 핵 폐기 과정과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러시아로 넘어간 그 내용물이 한시적 보관을 위한 것이라면 더욱 심각하고 복잡해질 수 있다.
또 한 가지 상기할 부분은 역시 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러시아의 역할이다. 이는 북한과 러시아 간 막후 물밑 접촉이 진행됐음을 시사한다. 물론 러시아는 러시아대로 자신들의 ‘협조 증거’를 숨기기 위해 나선 것도 있지만, 북한의 비핵화 과정을 앞둔 미국이나 국제사회 입장에선 무척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